나이브 부켈레 엘살바도르 대통령. 로이터 연합뉴스
엘살바도르가 암호화폐(가상자산) 비트코인을 법정통화로 인정하기로 한 것은 확실히 비트코인에 호재로 작용해, 발표 직후인 9일 비트코인 가격이 껑충 뛰었다. 인구 650만명의 작은 나라이지만 첫 국가 단위의 암호화폐 실용화 실험에 상당한 기대를 거는 것이다. 하지만 ‘깜짝쇼’를 즐기는 나이브 부켈레(40) 엘살바도르 대통령의 정치적 마케팅 성격이 짙다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부켈레 대통령은 지난 8일 밤 엘살바도르 의회에서 비트코인 법정통화 법안이 총 84명 중 62명의 찬성으로 통과하자, 본인 트위터에 “역사적인 일”이라며 기뻐했다. 그는 이어 화산 지열을 이용한 비트코인 채굴 계획을 마련할 것이라며 비트코인 법정통화 계획을 강하게 추진할 뜻을 밝혔다.
시장은 환호했다. 전날까지 중국의 통제와 미국 연방수사국(FBI)의 비트코인 회수 등 악재로 3만1천달러대까지 떨어졌던 비트코인 가격은 법안 통과 소식에 3만7천달러대(한국시각 10일)까지 올라섰다.
하지만 엘살바도르에서도 실제 의미가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법안에 따르면, 엘살바도르 국민들은 앞으로 90일 안에 비트코인으로 세금을 내고 물건값을 치를 수 있는데, 비트코인 가격의 변동성이 크다는 한계가 있다.
엘살바도르 국민 중 비트코인에 접근할 수 있는 이들이 별로 없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엘살바도르 정부는 디지털 지갑 기업인 스트라이크와 파트너십을 맺고 비트코인 사용 인프라를 구축할 예정이지만, 국민의 70%가 은행 계좌조차 없는 나라에서, 복잡한 개념의 비트코인의 활용도가 얼마나 될지 의문이 제기된다. 중앙아메리카대학 인권연구소 소장인 호세 마리아 토헤이라는 <가디언>에 “이번 결정을 이해하기 어렵다. 이 정부는 많은 선전을 하지만 가난한 이들을 돕는 구조적인 변화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이번 결정을 부켈레 대통령의 정치 스타일과 연관짓기도 한다. 기업운영 경험이 있는 부켈레는 2019년 부패 척결과 범죄 감소, 경제 활성화 등을 내걸고 당선됐다. 30년 양당체제를 깬 사상 최연소 30대 대통령의 탄생에 ‘이변’, ‘아웃사이더의 반란’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부켈레는 등장 이후에도 파격적인 행보로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받았다. 지난해 초 국회가 치안 예산 편성을 머뭇거리자, 자동소총으로 무장한 군경을 거느리고 국회에 쳐들어갔다. 그해 4월에는 범죄조직 간 싸움이 격화되자 죄수 수백명의 웃통을 벗긴 교도소 사진을 공개했다.
비트코인 법정통화 결정도 별다른 사회적 논의 절차를 거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인권단체 크리스토살의 다비드 모랄레스는 “이런 중요한 결정이 전국적인 토론 대신 정치 마케킹 전략의 일환으로 이뤄졌다”고 비판했다.
분명한 것은 엘살바도르가 암호화폐의 중요한 실험 단지가 됐다는 것이다. 달러를 기반으로, 국내총생산의 20%가 넘는 59억달러를 국외 교민의 송금에 의존하는 엘살바도르 경제 체제에서 비트코인이 얼마나 제대로 뿌리내리느냐에 따라 향후 암호화폐의 성쇠가 상당한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최현준 기자
haojune@hani.co.kr
나이브 부켈레 엘살바도르 대통령이 10일 본인 트위터에 지열발전을 활용해 비트코인 채굴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트위터 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