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욱일기’를 단 일본 해상자위대 호위함 입항을 허용한 데 이어, 4년 넘게 갈등을 빚던 ‘초계기 위협 비행’ 문제에서도 당시 군이 만든 대응 지침을 철회하기로 하는 등 한발 물러설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일 군사협력을 가로막던 두 걸림돌인 ‘욱일기’와 ‘초계기 문제’ 모두가 한국의 양보로 풀려가는 모양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31일 “한국 해군이 2018년 12월 자위대기에 (사격) 관제용 레이더를 비춘 문제를 둘러싼 일-한 정부의 협의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며 한국 정부가 ‘선조치’를 취하면 일본이 이를 받아들이는 방향으로 조율이 진행 중이라고 보도했다.
구체적으로 한국 해군은 초계기 위협 비행 사태가 발생한 직후인 2019년 2월 만든 ‘일본 초계기 대응지침’의 철회를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지침은 일본 군용기가 두 차례 경고에도 통신에 응하지 않고 가까이 날아오면 ‘추적 레이더’를 쏘도록 규정하고 있다.
국방부가 2019년 1월 공개한 2018년 12월20일 조난 선박 구조작전 중인 광개토대왕함 상공에 저고도로 위협 비행을 하고 있는 일본 초계기 모습(노란 원). 국방부 유튜브 캡처
추적 레이더는 함정에서 목표물을 타격하기 위해 표적의 방향·거리·고도를 재는 레이더이기 때문에 이것으로 상대를 겨냥하는 것은 공격을 준비하는 적대적 행위로 받아들여진다. 이 지침의 존재는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뒤인 지난해 8월 공개된 바 있다.
다만 양국은 첨예하게 엇갈리고 있는 ‘초계기 위협 비행’과 ‘레이더 조사’를 둘러싼 사실 관계는 서로 묻지 않는 쪽으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해 이종섭 국방장관은 지난 3월 말 국회 국방위원회에 출석해 ‘일본은 사실 왜곡을 중단하고 위협비행을 사과하라’는 기존 국방부 입장에 변화가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일본도 계속 한국을 추궁하기보다 지침 철회를 ‘사실상 양보’로 받아들이고 향후 군사 협력 강화로 나아간다는 현실적 선택을 한 셈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아시아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 때인 6월3일로 예상되는 “일-한 방위상 회담에서 하마다 야스카즈 방위상이 이 장관에게 사실인정을 요구하지 않을 의향”이라고 전했다.
신문은 나아가 “레이더 조사 문제가 수습되면 일-한 안보협력은 2018년 이전 상황으로 돌아간다. 해상자위대와 한국 해군의 훈련 재개도 조율될 것”이라고 밝혔다. 사카이 료 해상자위대 막료장도 30일 기자회견에서 ‘초계기 위협 비행’ 문제와 관련해 “일·미·한 협력을 저해하지 않도록 일-한 협력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한국군과 공동훈련에 대해선 “시기가 무르익었다. 신속하게 교류를 재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초계기 갈등은 2018년 12월 한국의 광개토대왕함이 동해에서 표류 중인 북한 어선 수색작업을 벌일 때 근처를 날던 해상자위대 초계기를 겨냥해 사격 관제용 레이더를 쐈다고 일본이 주장하며 시작됐다. 한국은 레이더를 쏜 사실이 없고, 오히려 일본 초계기가 위협 비행을 했다고 맞서면서 대립이 이어져 왔다.
도쿄/김소연 특파원
dand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