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오사카부 공립 중학교에서 40년 동안 사회과 수업을 가르치고 있는 히라이 미쓰코 교사가 자신이 집필한 ‘위안부 문제를 아이들에게 어떻게 가르칠까’라는 제목의 책을 들고 있다. 오사카/김소연 특파원
“역사교육을 통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영원히 기억하겠다는 ‘고노 담화’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습니다.”
히라이 미쓰코(62)는 일본 오사카부 공립 중학교에서 40년 동안 역사를 가르쳐온 교사다. 1993년 8월 고노 요헤이 당시 관방장관이 일본군 위안부 동원 과정의 강제성과 군의 개입을 인정하고 사죄한 ‘고노 담화’를 발표한 뒤 26년 동안 위안부 관련 수업을 해왔다. 그는 ‘고노 담화’가 나온 지 4일로 30년이 되지만, “역사 연구·교육을 통해 이(위안부) 문제를 영원히 기억해 같은 잘못을 결코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담화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한겨레는 담화 발표 30주년을 맞아 일본 교육 현장 목소리를 듣기 위해 지난달 12일 히라이 교사를 만났다. 우익들의 공격으로 학생들이 피해를 받을 가능성이 있어, 그가 일하는 학교 이름은 밝히지 않는다.
‘역사 교육을 통해 위안부 문제를 기억하겠다’는 담화의 약속이 교육 현장에서 처음 구체화된 것은 이듬해인 1994년이었다. 그해 처음 일본 고등학교 교과서에 위안부 관련 기술이 실렸다. 3년 뒤인 1997년부터는 모든 중학교(3학년) 교과서에도 관련 기술이 추가됐다. 교과서에 위안부 관련 내용이 실리게 되자, 이 문제를 학생들에게 가르칠 수 있게 됐다. 히라이의 긴 활동이 시작된 것이다.
“1993년 담화가 발표됐을 때 일본이 식민 지배의 책임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됐다는 생각에 너무 기뻤습니다. 1997년 학교에서 본격적으로 위안부 수업이 시작되고, 당시 방송사가 다큐멘터리를 찍을 정도로 사회적 관심이 높았어요. 전국의 역사 교사들이 위안부 문제를 어떻게 가르칠지 활발히 토론했습니다.”
1993년 8월4일 일본군 ‘위안부’ 동원 과정의 강제성과 일본군의 개입을 인정한 ‘고노 담화’를 발표했던 고노 요헤이 전 일본 관방장관이 2015년 6월 일본기자클럽이 주최한 기자회견에서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와 동시에 거대한 역풍이 불었다. 일본 문부과학성이 1996년 6월 이듬해부터 사용될 중학교 교과서 검정 결과가 공개되자 극우 세력이 맹렬히 반응하기 시작했다. 일본 보수 언론들은 ‘편향된 교과서’, ‘일본을 자랑스럽게 여기지 않는 교과서’라는 딱지를 붙였다. 이후 ‘역사 왜곡 교과서’(후소사·지유사 교과서)를 출판해 악명을 얻게 되는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그해 12월 결성됐다. 1997년 2월엔 자민당 소장파 의원 87명이 모여 ‘일본의 앞날과 역사교육을 생각하는 의원모임’을 만들었다. 고 아베 신조(1954~2022) 전 총리는 이 모임의 사무국장을 맡아 교과서 개정 운동을 주도했다.
우익들의 움직임은 집요했다. “가두시위를 하고, 교과서 회사와 집필자들에게 협박장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러자 위안부 문제를 가르치는 것은 위험하다는 분위기가 학교 현장에 퍼졌어요.” 출판사들도 위축되며 위안부 기술이 교과서에서 삭제되기 시작했다. 일본 정부는 노골적으로 움직였다. 아베 전 총리는 1차 내각(2006년 9월~2007년 9월) 때인 2007년 3월 “위안부를 강제로 연행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공문서는 발견되지 않았다”는 내용을 ‘각의 결정’(한국의 국무회의 의결)했다. 고노 담화가 인정한 강제성을 희석하려는 시도였다. 2차 내각 때인 2013~2014년엔 담화를 수정하려다 접기도 했다. 이런 여파로 현재 사용되는 8종의 중학교 교과서 가운데 2종에만 위안부 기술이 남았다.
2000년대 들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유튜브의 사용이 확산되며 교사 개인에 대한 공격도 시작됐다. 히라이도 표적이 됐다. ‘반일이다’, ‘교과서에도 없는 위안부 문제를 가르치고 있다’는 우익들의 공격을 받았다. 교육 현장에서 꾸준히 위안부 문제를 가르치는 히라이의 활동이 2018년 일본 언론을 통해 기사화되자, 유명 극우 정치인이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 그 때문인지 학교로 항의 전화가 쏟아졌다. “그때 교장 선생님이 ‘위안부 수업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을 했어요. 물론 저는 ‘외부 압력 때문에 수업을 하지 않으면 학교 교육이 왜곡된다’고 맞섰죠.”
온갖 공격에도 히라이 교사는 26년째 버티고 있다. 위안부 수업의 대상은 중학교 3학년이다. 1~3학년 담당을 번갈아 맡아야 하기 때문에 매년 가르치진 못한다. 지금까지 ‘위안부’ 수업은 11차례 이뤄졌다. “과거사를 다루면서도 어떻게 현대적인 문제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합니다. 예를 들어 위안부 문제가 교과서에 등장한 배경은 무엇일까, 교과서에서 점점 기술이 사라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등 당시 사회적 흐름과 연계하면서 수업을 하려고 노력해요.”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제1201차 정기 수요시위가 2015년 10월 서울 종로구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려 한 참가자가 ‘역사 교과서가 기억하게 하라’고 쓴 손팻말을 흔들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수업을 하며 히라이 교사가 지키려는 원칙이 있다. “선과 악을 제가 판단하지 않습니다. 저는 신문기사나 위안부 피해자의 이야기 등 자료를 제공하고,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토론하도록 돕는 역할을 합니다.”
수업은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을까. 학생들이 남긴 감상문에서 조금은 짐작할 수 있다. ‘앞으로 두번 다시 여성에 대한 이렇게 끔찍한 일, 그 원인이 되는 전쟁은 일어나면 안 된다’, ‘위안부 피해자들은 지금도 힘들 것이다. 이 문제를 똑바로 이해하고, 조금이라도 이 사람들에게 협력하고 싶다’, ‘일본 정부가 마음에서 우러나는 사과를 하길 바란다’.
히라이는 수업 뒤 아이들이 저마다 이 문제에 대해 깊게 고민하게 되는 것을 보면서 교과서에 관련 기술이 사라져도 위안부 문제를 계속 가르쳐야 한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했다. “한 학생이 위안부 피해자들이 존경스럽다고 말을 하더라고요. 이분들이 너무 힘든 상황인데도 자신의 피해를 직접 세상에 알려, 우리가 이해할 수 있게 됐다며 훌륭한 사람들이라고 말을 하는데 정말 기뻤어요.” 히라이는 “위안부 피해자에 대해 존경심을 갖고 이분들이 사회를 움직였다는 것을 아이들이 깨달았다는 사실에 감격했다”고 말했다.
아무리 힘들어도 위안부 수업을 놓지 않게 버팀목이 되어준 것은 고노 담화였다. “누군가 ‘왜 위안부 문제를 가르치냐’고 묻는다면 ‘고노 담화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할 것 같아요. 담화를 실천하고 있어 자부심을 느낍니다.” 그는 위안부 피해 사실을 1991년 8월 처음으로 공개 증언한 김학순(1924~1997) 할머니의 절절한 외침도 가슴에 새기고 있다고 했다. “할머니가 생전에 ‘위안부 피해를 역사에 남기고, 가르쳐야 한다’고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역사를 가르치는 교사로서 피해 할머니들에게 응답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1983년 중학교 사회과 교사를 시작해 올해 40년째를 맞았다. 2021년 3월 정년퇴임을 했지만 재임용돼 65살까지 근무가 가능하다. “일본은 과거의 잘못을 충분히 인정하지 않았어요. 진정한 화해를 통해 주변 국가들과 우호관계를 맺어야 증오를 없앨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라도 위안부 수업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히라이는 “고노 담화가 있는 한 위안부 수업은 계속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오사카/김소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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