렉서스 LS 460 세단이 지난 1월 8일 디트로이트의 코보 홀에서 열린 노스 아메리칸 인터내셔널 오토 쇼 언론 내람회중 세계 처음으로 공개되고 있다. 연합
[도요타의 또다른 얼굴] 4. 수익 1조엔의 허실
도요타는 지난해부터 대표적 고급차 렉서스를 일본 국내 시장에도 투입했다. 그러나 국내 시장에선 외제차에 밀려 고전 중이며, 4개 차종 1만여대 리콜의 수모도 겪었다.
렉서스ES는 캠리와, 렉서스IS는 마크X와 차체 구조가 같다. 같은 엔진을 사용한다. 내장 등 꾸밈새만 다르다. 경쟁업체인 베엠베(BMW)가 ‘렉서스ES라니 단지 캠리다’라고 비아냥거리는 광고 공세를 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도요타 전문가는 “렉서스IS는 마크X보다 100만엔 이상 비싸다”며 “고객들은 호화 내장과 장비에 그 돈을 지불한다고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호화로운 내장뿐이 아니다. 렉서스 판매점을 짓는 데 7억엔 이상이 들었다. 전 렉서스 점포 건축비 총액은 2천억엔에 이른다. 거기에 점포당 연간 운영비가 3억6천만엔이 든다. 도요타계 판매점의 평균(건축비 3억여엔, 운영비 2억엔)의 2배 정도다. 렉서스를 사는 고객은 이런 고액의 판매비용도 지불하고 있는 셈이다. 도요타가 품질이 아닌 장식과 이미지, 광고 등을 앞세워 비싼 값에 렉서스를 팔고 있다는 얘기다. 지난 30년간 발간돼온 34권짜리 시리즈 <잘못투성이 자동차 선택>의 최종판을 지난 1월 펴낸 자동차 평론가 도쿠다이지 아리쓰네는 “도요타만큼 다른 사람의 충고에 귀를 기울이는 회사는 없다”면서도 “새로운 자동차의 가능성을 선진적인 기술로 제시한 것은 아니었다”고 비평했다.
도요타 정작 일본 시장서는 외제차에 밀려 고전
렉서스ES는 캠리와 차체·엔진 같아…“렉서스는 단지 캠리다” 도요타가 지난해 1조엔 이상의 수익을 올린 반면, 세계 최대 자동차업체 지엠은 1조 가까운 적자를 냈다. 지엠의 경영실패만이 원인일까?
지엠을 비롯한 미국의 빅3는 과거 불황으로 판매대수가 떨어지면 공장의 문을 닫고, 종업원들을 일시해고했다. 그러나 지금은 전미자동차노조(UAW)와의 노동계약에 따라 일의 유무에 관계없이 급여의 거의 전부를 지급하지 않으면 안된다. 운신의 폭이 좁은 회사로선 부담이 크지만, 노동자들은 고용안정이 보장된다. 빅3는 퇴직자를 포함한 노동자 연금과 건강보험 등에 막대한 자금을 대야 한다. 그 부담이 차 1대에 1200달러 꼴이다. 반면, 지난 1998년 국제 신용평가회사 무디스의 신용등급 하락에도 아랑곳않고 종신고용제를 고수해 고용안정의 대명사로 불리는 도요타는 급증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활용해 생산규모를 쉽게 조정할 수 있다. 기간제와 파트타임, 아르바이트 등 비정규직이 전체 직원의 30%를 넘는다. 비정규직을 늘리면 연금, 보험 부담도 최소화할 수 있다. 현재 도요타의 강점은 비정규직을 활용한 생산조정과 기업부담 억제에 있다. 그런 부담의 상당 부분을 사회에 떠넘긴 것이다. 도요타 종신고용제 뒷면엔 “비정규직이 전체직원의 30%”
도요타시 호미단지에는 3500여명의 일본계 중남미인들이 살고 있다. 대다수가 도요타에 부품을 납품하는 하청기업에서 일하고 있다. 파견회사에서 대규모로 집을 빌려, 독신 남성 4~5명이 함께 쓰는 기숙사로 활용하고 있다. 이들은 참을성 있게 열심히 일하지만 비정규직 신분은 벗어나지 못한다. 급여는 시간당 1300엔 정도이며, 의료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사례도 흔하다. 의료보험증 돌려쓰기도 자주 눈에 띈다. 파견회사에서 같은 나이의 중남미인 노동자들끼리는 한명만 보험에 가입한 뒤 보험증을 함께 쓰도록 지시한 것으로 추정된다.
도요타는 ‘세계 최저보다 10% 더 비용을 삭감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도요타 쥐어짜기의 부담은 하청업체로 고스란히 넘어가, 의료보험에도 가입하지 못하는 비정규직 외국인 노동자의 초장기 저임 노동을 낳고 있다.
일본계 중남미인 자녀들의 부적응도 심각한 문제다. 일본계 외국인을 고용하는 기업들이 복지 차원에서 이들의 자녀교육 등을 위한 환경을 조성하려 애쓰는 게 당연하지만, 도요타는 외면하고 있다. 일본계 외국인 자녀를 돕는 한 비영리단체는 “도요타에 기부를 요청했다가 거절당했다”며 “법인세를 내고 있고, 공장이 전국에 있기 때문에 특정 지역 단체에 기부할 수는 없다는 게 이유였다”고 한다. 외국인 노동의 혜택을 누리면서도 사회적 비용을 대는 데는 ‘인색한’ 게 도요타다.
도요타 쥐어짜기의 부담은 고스란히 “하청업체로”…의료보험도 제외
한 소설가가 작품을 통해 하청업체와 ‘공생하는’ 것으로 유명한 도요타의 한 단면을 비판한 적이 있다. 도요타는 필요할 때 필요한 부품만 조달하는 ‘간판방식’(JIT : just in time)으로 재고를 최소화해 비용을 절감하는 것을 자랑한다. 매우 합리적 시스템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그 뒤치다꺼리를 하는 하청업체의 처지가 되보면 사정은 정반대다.
창고도 재고도 없이 생산을 하니, 그 날의 생산에 필요한 부품을 정해진 시각, 장소에 어김없이 갖고 가야 한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생산에 차질을 빚어 큰 일이고, 마음 편히 일찍 도착하더라도 15분 전까진 수위가 공장 문을 열어주지 않아 부품을 내려놓을 수도 없다. 도요타 공장 문 앞에 부품업체 차량들이 늘 줄을 늘어서 주변 도로가 대혼잡을 빚는 이유다. 하청업체들로선 무섭기 그지 없는, 상식에 벗어난 합리화다. 그러나 하청업체에선 누구도 이의를 달 수가 없다.
지난해 9월 도요타시 의회에선 실소가 터져나왔다. 도요타가 개발해 아이치 지구박람회에서 선보인 차세대 도시교통시스템인 IMTS에 대해 도요타 출신의 시의원이 질의를 했을 때였다. 그가 IMTS 차량이 언제쯤 노선버스로 투입될 것인지를 묻자, 시 도시정비부장은 배기가스 규제와 안전 기준 등의 과제가 많이 남아 있어 박람회에서 사용한 차량을 그대로 쓰는 것은 곤란하다고 털어놓았다. 이런 뜻밖의 답변에 질의한 시의원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박람회장 사이의 이동수단으로 등장한 이 차량은 최첨단 정보통신기술로 차간 거리가 자동적으로 유지돼 교통정체에 따른 배기가스 발생이 억제되고 압축천연가스(CNG)를 사용하는 환경친화 차량이라고 대대적으로 선전돼왔다. 그런데 배기가스 규제조차 통과하지 못했다니 어처구니없기 그지 없는 얘기였다. 한 도요타 전문가는 “도요타가 차세대 차량 개발을 추진하면서 박람회를 틈타 공적 자금을 개발비로 당겨 쓰는 데 성공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공적 자금 타내 개발비로 쓰고 제품 실용화엔 나몰라라
“(박람회) 덕택에 도로가 정말 좋아졌다. 골프장도 훨씬 빨리 갈 수 있게 됐다.” ‘도요타 박람회’라고 불려온 아이치 박람회의 준비를 총괄 지휘한 일본 국제박람회협회 회장 도요다 쇼이치로 도요타자동차 명예회장이 박람회 폐막 직후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공적 자금을 ‘제물’로 삼고도 죄의식은 전혀 느끼지 못하는 도요타의 체질을 잘 보여준 사례다.
아이치 박람회의 최대 수혜자는 도요타다. 박람회 관련 도로 정비에 모두 7500억엔이 투입됐다. 박람회장 부근에 도요타 본사와 공장들이 밀집해 있어, 막대한 예산이 투입된 인프라 정비는 도요타 주변 ‘길닦기’로 직결됐다. ‘모든 길은 도요타로 통한다’는 말이 현실화했다.
지난 2월11일 도요타자동차의 본거지 도요타 시내에선 도요타 직원과 시민단체 회원 등 약 1600명이 모여 “도요타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라” “정규직을 채용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여기에는 도쿄대기오염공해재판 원고단 100여명도 참가했다. 이들은 대기오염 때문에 천식이 심해 질식사한 사람과 막대한 의료비로 고통을 겪는 환자들이 적지 않다며, 오염의 주범인 디젤차를 생산하는 도요타 등 자동차 업체들을 상대로 소송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공장 매연으로 인한 대기오염에 거액의 배상금을 지불하고 피해자 구제자금을 내놓은 철강·전력·석유 등의 기업들과 자동차 업체들의 대응은 대조적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도요타는 1심판결 직후 원고단과의 직접 담판에서 “행정 쪽에서 제도를 만들면 구제자금을 내겠다”며 사실상 책임을 인정했다. 그러나 3년이 지나도 제도는 만들어지지 않고, 도요타는 팔짱만 끼고 있다.
도요타의 천문학적 수익에는 원래 소비자와 하청업체에 돌아가야할 몫과 마땅히 지불해야 할 사회적 비용이 적잖이 포함돼 있다.
도쿄/<한겨레> 박중언 특파원 parkje@hani.co.kr
렉서스ES는 캠리와 차체·엔진 같아…“렉서스는 단지 캠리다” 도요타가 지난해 1조엔 이상의 수익을 올린 반면, 세계 최대 자동차업체 지엠은 1조 가까운 적자를 냈다. 지엠의 경영실패만이 원인일까?
지엠을 비롯한 미국의 빅3는 과거 불황으로 판매대수가 떨어지면 공장의 문을 닫고, 종업원들을 일시해고했다. 그러나 지금은 전미자동차노조(UAW)와의 노동계약에 따라 일의 유무에 관계없이 급여의 거의 전부를 지급하지 않으면 안된다. 운신의 폭이 좁은 회사로선 부담이 크지만, 노동자들은 고용안정이 보장된다. 빅3는 퇴직자를 포함한 노동자 연금과 건강보험 등에 막대한 자금을 대야 한다. 그 부담이 차 1대에 1200달러 꼴이다. 반면, 지난 1998년 국제 신용평가회사 무디스의 신용등급 하락에도 아랑곳않고 종신고용제를 고수해 고용안정의 대명사로 불리는 도요타는 급증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활용해 생산규모를 쉽게 조정할 수 있다. 기간제와 파트타임, 아르바이트 등 비정규직이 전체 직원의 30%를 넘는다. 비정규직을 늘리면 연금, 보험 부담도 최소화할 수 있다. 현재 도요타의 강점은 비정규직을 활용한 생산조정과 기업부담 억제에 있다. 그런 부담의 상당 부분을 사회에 떠넘긴 것이다. 도요타 종신고용제 뒷면엔 “비정규직이 전체직원의 30%”
지난 2월11일 도요타 시내에서 도요타 직원과 시민단체 회원 등이 도요타의 사회적 책임 이행을 촉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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