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민법 ‘이혼뒤 300일’내 출산땐 지금 남편 자식 인정안해
도쿄에 사는 38살 여성은 2002년 3월 남편과 이혼했다. 그해 9월 현재의 남편과 재혼해 바로 아들을 낳았다. 이 아이의 법적인 아버지는 누구일까?
이혼 뒤 임신했기 때문에 생물학적 아버지는 분명히 현 남편이지만 법적 아버지는 전남편이다. 현행 일본 민법 772조는 이혼 뒤 300일 이내에 태어난 아이는 자동적으로 전남편의 아이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6개월 만에 조산해 태어나 이혼 뒤 300일 규정을 채우지 못한 이 아이는 엄마의 전남편 호적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는 무적자로 남아 필요한 행정서비스도 받을 수 없다.
아이 엄마는 전남편에게 부탁해 재판을 통해 친자관계를 바로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아이의 호적에는 전남편의 이름과 아버지가 바뀐 경위가 기록으로 남았다. 그나마 이 사례는 ‘행복한 경우’에 속한다. 전남편이 협조적이지 않으면 디엔에이(DNA) 감정을 통해 번거로운 친자관계 확인을 거쳐야 한다. 일본에서는 매년 2천명 정도가 전남편과 친자관계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디엔에이 감정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300일 규정은 일본 근대국가 형성 초기인 메이지시대(1898년)에 제정된 민법을 그대로 계승한 것으로, 애초 법률상 부친을 분명히 해 아이 교육에 책임을 갖도록 하기 위한 의도였다. 그러나 의학 발달로 임신 시기와 부자관계를 특정할 수 있게 됐기 때문에 300일 규정의 의미는 퇴색한 지 오래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일본 집권여당인 자민당 안에서도 이런 시대착오적인 법 때문에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해 지난달 프로젝트팀까지 띄워 300일 규정의 예외조처를 의원입법으로 인정하는 내용의 특례법안을 만들었다. 여기에다 민법 733조의 여성 재혼금지 기간을 현행 6개월에서 100일로 단축하는 안도 검토했다.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여성표를 의식한 측면도 있었다.
그러나 나가세 진엔 법무상이 지난 6일 기자회견에서 정조의무 운운하면서 민법 772조의 특례조처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갔다. 자민당 보수파 의원들이 10일 “혼인제도 자체가 개미구멍처럼 무너질 위험성이 있다”며 가세하는 바람에 결국 이번 회기 법안 제출은 물건너갔다. 민법 772조의 덫은 100년이 지나도 일본에서 아직도 막강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여성 재혼금지 기간 제도는 2005년 폐지됐으나 이혼 뒤 300일 조항은 남아 있다.
도쿄/김도형 특파원 aip20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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