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오전 교토부 교탄고시 교가미사키 지역에 설치된 미국 엑스밴드 레이더 기지의 모습. 파란색 건물 반대쪽에 레이더가 설치돼 있다. 1년 전과 달리 철조망에 고압 전선이 설치돼 있었다.
“처음엔 소음이 무지 컸어. 지금은 좀 나아졌는데, 바람이 불면 여전히 시끄럽긴 해. 그런데 한국에도 레이더를 만든다고?”
미국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핵심인 엑스밴드(X-band) 레이더(AN/TPY-2)가 설치된 일본 교토부 교탄고시의 미군 교가미사키 통신소. 1년 만에 찾은 기지 풍경은 예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기지로 이어지는 국도 178호선을 따라 동쪽으로 나아가면 북쪽엔 드넓은 동해 바다가 펼쳐지고, 느닷없이 등장한 철조망 안쪽으로 축구공 모양의 미군 통신용 안테나가 모습을 드러낸다. 이 통신소 가장 북쪽에 설치된 초록색 건물 너머로 그 존재만으로도 동아시아 정세에 깊고 미묘한 영향을 끼치는 미국의 엑스밴드 레이더가 있다.
‘부응~’ 소음속 자포자기 주민들
“전엔 밤잠 설쳤는데 소음 줄고 적응”
“국가에 못이기니 조용히 있는거지”
“전자파 안전 정부자료 믿을 수 없어”
‘해안형’일 레어더파 바다 향하지만
‘내륙형’ 성주는 전방에 수만명 거주
전자파 유해성 직접 비교는 어려워
일, 밀어붙이기 한국과 다른 해법미-일 MD강화 기여 ‘국익’ 공감대
설명회만 12번, 토지도 임차방식
정부·미군·주민 3자협의체까지
일 대책위 “전자파는 눈에 안보여
중국 적시하고 한국 잘 살수 있나”
기지 정문에서 동쪽으로 500m 정도 떨어진 소데시 마을에서 나고 자랐다는 한 노인(84)은 처음엔 레이더 가동을 위한 “발전기 소음으로 마을 전체가 떠들썩했는데, 지금은 상당히 안정된 상황”이라고 말했다. “부웅~” 하는 발전기 소음 소리가 마을 앞 방파제를 때리는 파도 소리에 섞여 귀청을 자극했다. 노인과 대화를 주고받는 동안 나타난 그의 부인(77)도 “예전엔 (소음 때문에) 밤에 잠들기 힘들었는데, 지금은 2년이 지나 적응이 돼서….” 부부는 더 이상 말이 없었다. 기지 정문 앞 창고에서 일하던 주민 나카무라 쇼조(76)도 “서풍이 불 땐 소음이 좀 더 커진다. 예전엔 ‘밤에 잠을 잘 못 자겠다’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말했다.
국방부가 13일 주한미군의 사드를 경상북도 성주에 설치하겠다고 밝힌 뒤, 일본 교토의 작은 해안 마을에 한국 사회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곳과 똑같은 기종의 레이더가 쏘는 전자파의 영향에 대한 우려로 한국 사회의 여론은 갈가리 찢겨 있다.
<한겨레>는 한국에서 사드 관련 논의가 진행되던 초기인 지난해 6월 이곳을 방문해 소음과 전자파 피해 등을 우려하는 주민들의 목소리를 한 차례 전한 적(2015년 6월29일 1면
강한 전자파…“기지 근처 가면 구토·어지럼증”)이 있다. 그 무렵엔 이 레이더로 인한 건강 피해를 우려하는 주민들의 반감이 상당했지만, 1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주민들은 좋든 싫든 레이더와 공존하는 길을 택한 것처럼 보였다.
한국에서처럼 일본에서도 레이더 배치 결정은 갑작스레 이뤄졌다. 미·일 양국 정상은 2013년 2월22일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2006년 6월 아오모리현 샤리키에 이어 일본에 두번째 엑스밴드 레이더를 설치하기로 발표했다. 주민들과 아무런 의사소통을 거치지 않은 일방적 합의였다.
하지만 일본에선 성주처럼 수천명이 모인 대규모 반대 집회가 일어나진 않았다. 2013년 2월 레이더 배치 결정 이후 방위성과 교토부·교탄고시 등 지자체는 4차례에 걸쳐 레이더 설치의 타당성과 예상되는 문제에 대한 대응책을 묻는 치열한 질의응답서를 주고받았다. 17일 <한겨레>가 확인한 질의응답서에서 지자체가 가장 집착한 질문은 ‘왜 이곳에 레이더를 설치하는가’와 ‘이것이 정말 일본의 안보에 기여하는가’였다.
일본 정부는 이에 대해 “이 레이더 정보는 자위대 레이더 정보와 합쳐져 (일·미가) 실시간으로 공유한다. 일본을 향한 탄도미사일 공격이 이뤄질 경우 더 정밀하고 확실히 탐지·추적하는 게 가능해진다”는 일관된 입장을 유지했다. 또 교탄고의 교가미사키에 레이더를 설치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일본·미국으로 날아가는 탄도미사일을 탐지·추적하는 게 가능한 위치에 있고 △레이더를 차단하는 방해물이 없으며 △주변에 전파방해를 줄 만한 요인이 없다는 이유를 들었다. 2003년 12월 미국의 미사일방어(MD) 계획에 참여하기로 결정한 일본 입장에선 이 레이더 설치가 미-일 엠디 강화에 기여할 것이란 국내적 동의가 있었던 셈이다. 사드 배치가 미-중 간의 ‘그레이트 게임’이 되어 버린 현재 한국과는 전략적 상황이 전혀 달랐던 것이다.
물론, 일본에서도 한국처럼 레이더의 안전성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 이와 관련해 일본의 배치 조건은 한국보다 낫다. 교가미사키는 성주와 달리 북을 겨냥해 바다 쪽으로 레이더파를 쏘기 때문이다. 사토 도루 교토대 교수 등은 이런 사실을 염두에 두고 2013년 7월 교토부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엑스밴드 레이더는 전방의 물체에 (열을 발생시키는) 열작용을 한다. 레이더 전면에 출입금지 구역을 설정하면 안전성을 담보할 수 있다”는 취지의 결론을 내린다. 이 레이더가 인체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는 단언할 수 없으나 교가미사키에선 바다를 향해 레이더를 쏘니 전방에 출입금지 지역을 설치하면 된다는 지적이다. 레이더 2㎞ 앞에 인구 수만명이 사는 성주와는 동등 비교를 하기 힘들다.
지역 주민인 나가이 도모아키가 미군 레이더 기지 앞에서 현재 마을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취재진이 기지 주변을 둘러보자 경비 인력이 몰려들어 취재진의 사진을 촬영해 갔다.
결국 일본에선 레이더 설치와 관련된 사회적 갈등이 ‘소음’과 미군이나 군무원(군속)이 일으키는 사건·사고에 어떻게 대응할까 하는 기술적인 문제로 축소됐다. 미군은 소음 피해를 호소하는 주민들의 민원이 이어지자 2015년 2월 발전기에 머플러 등을 설치했고, 2017년까지 간사이전력으로부터 전기를 끌어와 관련 문제를 해소할 계획이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일본 정부의 행정 대응이다. 일본은 2013년 2월 레이더 설치 결정 이후 주민들을 대상으로 12번이나 설명회를 개최했다. 미군에게 제공하는 토지는 강제수용 대신 주민들에게 시가보다 훨씬 높은 가격으로 임차 계약을 맺었다. 정부는 또 교탄고시에 총 30억엔의 교부금 지급을 결정했고, 2014년 말부터는 일본 정부·미군·주민 대표들이 모여 기지 문제를 논의하는 ‘안전·안심 연락회’라는 협의체도 만들었다. 교토부 누리집 등을 보면, 기지 주변의 소음과 전자파 관련 실측치 자료들이 공개돼 있다. 물론 이 모든 자료의 결과는 한결같이 “이상 없음”이어서, 방위성 자료는 “믿을 수 없다”고 불만을 쏟아내는 이들도 있다. 그렇다면 주민들은 레이더 설치에 찬성 입장으로 돌아섰을까. 소데시 주민 야마구치 게이치(61)도 “이런 시설이 들어서는데 좋아할 사람들이 어디 있나. (불만을) 말해야 국가를 이기지를 못하니까 그냥 조용히 있는 것이다. 한국인과 일본인은 표현 방식의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소데시와 인근 오와 마을을 돌며 10여명에 이르는 주민들에게 말을 걸었지만 “괜찮다”, “국가가 하는 일인데 어쩌겠냐”, “벌써 생긴 걸 이제 와서”라는 일본인 특유의 순응하는 듯한 말만 되풀이할 뿐 똑 부러지게 자신의 의견을 밝히는 이들이 드물었다.
오완 무네노리(75) ‘엑스밴드 레이더 기지 반대 교토연락회’ 공동대표는 “레이더로 인한 악영향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전자파는 보이지 않고 소음의 영향도 사람에 따라 다르다. 난 이상한데, 옆에서 괜찮다고 하면, 나만 이상한 사람이 되어 버린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국이 미국과 하나가 되어 중국을 적시해 한국이 잘 살아갈 수 있겠나. 안보 문제는 상대를 자극하는 군사적 갈등이 아니라 대화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 전자파와 소음만을 내세우면 이 문제의 본질을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부웅~”거리는 불길한 소음 아래 말 못할 불만과 자포자기의 감정 아래 억눌린 소데시. 한국 정부가 원하는 ‘성주의 미래’는 무엇일까.
교가미사키(교토)/글·사진 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미군 레이더 기지에서 동쪽으로 500m 떨어진 해안 마을 소데시의 모습. 저 멀리 왼쪽에 보이는 녹색 건물이 엑스밴드 레이더 장비가 설치된 건물이다.
교토부 교탄고시 소데시 항구 근처에서 바라본 미군 레이더 기지의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