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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일본

일본은 정말 한국과의 갈등을 원할까

등록 2019-03-15 19:42수정 2019-03-16 00:06

[토요판] 다음주의 질문
강제동원 손해배상소송 원고 쪽 대리인들과 한·일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지난해 11월 피해자들의 사진을 들고 일본 도쿄 신일철주금 본사로 향하고 있다. 이들은 일본 기업들의 한국 내 자산을 현금화할지를 놓고 숙고를 거듭하고 있다. 도쿄/조기원 특파원 garden@hani.co.kr
강제동원 손해배상소송 원고 쪽 대리인들과 한·일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지난해 11월 피해자들의 사진을 들고 일본 도쿄 신일철주금 본사로 향하고 있다. 이들은 일본 기업들의 한국 내 자산을 현금화할지를 놓고 숙고를 거듭하고 있다. 도쿄/조기원 특파원 garden@hani.co.kr
그것은 어찌 보면, 매우 냉정하고 이성적인 질의응답이었다.

12일 오후 4시14분. 마루야마 호다카 의원(일본유신의모임)이 일본 중의원 재무위원회 발언대에 나섰다. 그의 질문은 악화될 대로 악화된 한-일 관계의 맥락을 떠올릴 때 매우 도발적인 내용이었다. “정부가 (한국에 대한) 관세 인상을 검토한다는 기사가 나왔다. 그러나 일본엔 특정 국가에 대해 관세를 인상할 수 있는 법 규정이 없다. 법 개정이 필요하지 않은가.” 나카에 모토야 재무성 관세국장은 일본 관료답게 “정부가 어떤 타이밍에 무슨 조처를 취할지 밝히는 것은 손안에 있는 패를 보여주는 것”이라며 질문의 핵심을 비켜 갔다.

마루야마 의원은 한국인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한국 내 일본 기업의 자산을 압류·현금화해 피해가 현실화되면, 정부가 “정말 관세 인상 등의 보복조처를 취할 것을 검토 중이냐”고 재차 물었다. 이번엔 이시카와 히로시 외무성 관방 심의관이 답변대에 섰다. “한국에 협정 위반에 따른 협의를 요청하고 있다. 한국이 성의를 갖고 응할 것이라 본다.” 질문 공세는 이어졌다. “위안부 합의 때도 그랬었다. 기시다 후미오 (당시) 외무상이 ‘한국이 합의를 지키게 하겠다’고 몇번이나 말했다.”

결국,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상이 수습에 나섰다. “외교 문제니까 (내 관할인 재무성이 아닌) 외무성이 소관하고 있다. 여러 대항 조처가 있다. 관세뿐 아니라 송금 정지, 비자 발급 정지 등 여러 보복조처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아소 재무상은 “그런 일이 발생하기 전 단계에서 지금 협상을 하는 중이다. (정부는) 이를 부추기는 입장이 아니다”라는 말로 답변을 마쳤다.

아소 재무상의 이 발언을 놓고 한국에선 일본이 정말 관세 인상 등 보복조처를 단행할까를 두고 갑론을박이 오갔다. 정답은 뭘까. 질의응답 속에 모든 내용이 담겨 있다. 일본은 한국과 불필요한 마찰을 원하지 않는다. 세계 3위 경제대국인 일본과 10위 중견국인 한국은 정보기술(IT)·화학·첨단소재 분야에서 서로한테 사활적인 ‘서플라이 체인’(공급망)을 유지하고 있다. 갑작스러운 관세 인상은 이 공급망을 교란한다. 책임 있는 국가라면, 이런 혼란을 피하려 한다. 마루야마 의원이 지적했듯 관세 인상을 위해선 일본 관세법도 개정해야 한다. 법 개정은 많은 시간이 걸리는 복잡한 문제다.

게다가 한국은 일본에 여전히 매력적인 무역 상대이자 투자처다. 일본은 한국을 상대로 매년 큰 폭의 무역흑자(지난해엔 240억달러)를 기록하고 있고, 한국에 진출한 기업도 대개 수지 남는 장사를 한다. 지난해 12월 일본무역진흥기구(JETRO) 보고서를 보면, 84.9%에 이르는 한국 진출 기업이 흑자를 기록했다. 이는 중국(72%)·타이(67%)보다 높은 수치다.

그렇다면 일본은 아무 조처도 하지 않을까. 그렇진 않다. ‘외교적 해법’이 도출되지 않는 상황에서 한국 원고인단이 일본 기업 자산을 현금화하면, 결국 보복조처를 취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정의’가 아닌 냉혹한 ‘국익’의 세계다. 일본 정부는 이런 상황을 피하려 1월10일 한·일 청구권협정에 규정된 분쟁해결 절차에 따라 한국 정부에 ‘외교 협의’를 요청했다. 앞서 한국도 박근혜 정권 시절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이 절차에 따른 협의를 요청한 바 있다.(그 결과가 2015년 12·28 합의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일본의 요청을 뭉개고 있다가 아소 부총리의 발언이 나온 직후인 14일 처음으로 양국 간 국장급 협의에 응했다. 이 만남은 결국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한 양국 간 ‘협의틀’이 될 가능성이 크다.

남은 변수는 원고인단의 동향이다. 이들이 당장 내일이라도 일본 기업의 한국 내 자산을 현금화하면 일본은 보복할 것이다. 일본에 타격이 적은 비자발급 제한, 송금 제한 등에서 한국을 아프게 할 수 있는 전략물품 수출 제한, 관세 인상 등으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최악의 상황을 피하려면 정부가 나서 원고인단을 설득하는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한·일이 무역전쟁에 이르게 된다면, 그 책임은 원고인단이 아닌 정부가 져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양국 관계에 큰 파장을 몰고 올 수도 있는 힘겨운 결정의 책임을 고령의 유족들과 젊은 변호사들에게 전가하고 있다. 이것은 ‘무책임’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매우 실망스러운 태도다.

길윤형 국제뉴스팀 기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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