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은 코로나19 방역대책으로 뭇매를 맞은 일본 정부가 발빠르게 재난지원금 성격의 현금 지급에 나섰다. 긴급사태 선언을 유지하려면 민심을 달래야 할뿐더러, 2009년 세계금융위기 때 대규모 적자재정을 경험해본 자신감이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일본 총무성은 오는 27일 기준 자국에 거주하는 일본인은 물론, 3개월 이상 일본 체류 자격이 있고 주민등록이 되어 있는 외국인도 1인당 현금 10만엔(약 113만원)을 주기로 20일 결정했다. 애초 소득 급감 가정에 현금 30만엔(약 340만원)을 주려고 했으나 기준이 까다롭다는 비판이 쇄도하자 계획을 수정했다. 추가 지급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 가운데 이르면 5월부터 10만엔 지급이 시작될 전망이다.
일본 정부는 이를 위해 2020년도 추가경정예산안을 25조6914억엔으로 수정해 각의 결정(국무회의 의결)을 했다. 소득 급감 가정에 30만엔을 지급할 때보다 8조8857억엔이 늘었다. 일본 정부는 늘어난 예산을 모두 국채 발행으로 메울 계획이다. 올해 일본 정부 국채 발행액은 58조2000억엔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할 전망이다. 하지만 야당은 정부가 취소한 ‘소득 급감 가정 30만엔 지급’도 병행해 실시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현금 지급 이외에 상가 임대료 지원책도 논의되고 있다고 <엔에이치케이>(NHK) 방송 등이 전했다. 집권 자민당의 기시다 후미오 정조회장은 20일 “(세입자)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법률을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야당인 입헌민주당과 국민민주당은 상가 임대료 유예를 담은 법안을 제출할 계획이다. 공적 금융기관이 임대료를 일정 기간 대신 부담하고, 세입자들이 1년여 뒤 지급 능력에 맞춰 변제하는 방법이 거론된다.
일본 정부가 과감하고 신속한 경제 대책을 실시할 수 있는 몇 가지 배경이 있다. 우선 긴급사태 선언으로 국민에게 고통 감내를 요구하는 상황에서 국민들이 경제 불황에 대비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지원책을 내놓을 필요가 있다. 또 2009년 세계금융위기 때 이미 1인당 현금 1만2000엔을 지급한 경험도 있다.
박상준 와세다대 교수는 21일 <한겨레> 전화통화에서 2009년 당시 대규모 적자 재정을 꾸려도 엔화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지 않았던 점을 언급했다. 박 교수는 “일본은 과거 적자 재정 때 엔화 회피 현상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적자 재정을 실행할 수 있다”며 “한국은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라 주저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도쿄/조기원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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