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 AP 연합뉴스
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BOJ)이 국채 매입 상한액을 철폐한다고 발표했다. 이론적으로는 무제한 국채 매입이 가능하다는 뜻으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코로나19 감염 확산으로 인한 경제적 위기에 대응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나타낸 셈이다.
일본은행은 27일 금융정책 회의를 연 뒤 “상한을 두지 않고 필요한 금액만큼 장기 국채를 매입한다”고 발표했다. 아베 신조 정부는 2012년 말 재집권 뒤 양적 금융완화를 핵심으로 하는 경제정책인 ‘아베노믹스’를 실시했다. 국채와 회사채를 대량 매입해 시중에 돈을 풀어왔다. 일본은행은 이후 국채 매입에 ‘목표치’라는 이름으로 제동장치를 뒀다. 최근에는 연간 보유잔고 증가액 80조엔(약 916조원)이 상한이었는데, 이마저 폐지한 것이다. 일본은행은 회사채와 기업어음(CP) 매입 상한액도 합계로 기존 7조4000억엔에서 20조엔으로 3배 가까이 늘렸다. 금융정책 회의는 통상 이틀 일정으로 열리지만, 상황의 긴급성을 이유로 지난달에 이어 하루로 일정을 줄였다.
국채 매입 상한 철폐는 재정건전성보다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경제위기 대처에 중점을 두겠다는 일본 정부의 강력한 의지로 풀이된다. 일본 정부는 이날 국민 1인당 현금 10만엔 지급안이 포함된 추가경정예산안 25조6914억엔을 국회에 제출했다. 재원은 모두 국채 발행으로 마련한다. 적자 국채(세입 부족을 보충하기 위하여 발행하는 국채) 23조3264억엔, 건설국채(공공사업비 등 재원 조달을 위한 국채) 2조3290억엔을 발행한다. 추경예산안은 30일 국회에서 최종 통과될 전망이다.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는 이날 오후 기자회견에서 국채 매입 상한 철폐와 관련해 “채권시장 안정(목적)에 더해 정부 긴급경제대책에 의한 국채 발행 증가가 예상된다. 매입 상한을 (이제부터는) 두지 않겠다는 것으로, 필요한 만큼 얼마든지 (국채를) 사겠다”고 말했다.
일본은행은 이날 발표한 ‘경제·물가 정세 전망’에서 올해 일본 경제가 3~5% 마이너스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세계 금융위기 때인 2008년 일본 경제성장률이 -3.4%를 기록했는데, 금융위기 때보다 마이너스 경제성장 폭이 더 커질 수 있음을 내비쳤다.
일본은행의 국채 매입 상한 철폐와 관련해 채권시장에서는 실질적 의미가 크지 않은 상징적인 조처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도 있다. 이토시마 다카토시 픽테투신투자 전략가는 <니혼게이자이신문>에 “회사채와 기업어음 매입 상한을 끌어올렸지만, 자금 회전이 어려운 기업들은 (신용도가 낮아) 회사채를 발행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투자자문업체인 도카이도쿄조사센터의 세키 구니히토 전략가는 이 신문에 “현재도 (실제 매입액이) 국채 매입 목표인 연간 80조엔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며 “(다만) 어나운스먼트(발언) 효과는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닛케이225지수는 이날 전 거래일 대비 2.71% 상승 마감했다.
도쿄/조기원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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