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8일 총리관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고개숙여 인사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이날 지병 재발을 이유로 사임하겠다는 뜻을 밝혔으며, 후임 총리 지명 때까지 임무를 수행하겠다고 말했다. 도쿄/ EPA 연합뉴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임기를 1년 앞두고 28일 급작스럽게 사임한 데는 중3 때 발병한 이후 50년간 앓고 있는 ‘궤양성 대장염’이 직접적으로 영향을 줬다. 지병은 2007년 9월 1차 집권 때에 이어 또다시 그의 발목을 잡았다.
내각의 간부들과 자민당은 기자회견 전날까지도 ‘사퇴 불가’ 분위기가 강했다. 28일 오후 2시부터 언론을 통해 흘러나온 아베 총리의 사임 결정을 두고 일본 정치권에선 “전혀 상상도 못 했다”는 반응이 나왔을 정도다.
아베 총리는 현재 건강상태로 코로나19 방역과 경제 회복, 내각·자민당 간부 인사 등 산적한 현안을 해결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듯 보인다. 자민당 중견 의원은 “8월 중순 아베 총리가 주변에 전화를 걸어 외교도 잘 안되고 기력도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며 “아베 총리가 의욕이 없어지고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고 <선데이 마이니치>가 보도했다. 아베 총리도 기자회견에서 “병 치료를 하면서 체력이 완벽하지 않은데, 중요한 정치판단에 문제가 생기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며 사임 이유를 밝혔다.
아베 총리는 일본 헌정 사상 최장수 총리(연속 재임기간 2799일)로 일본 정치사를 바꾼 인물이다. 1차 집권기(366일)까지 포함하면 총리 재임 기간만 8년 반이 넘는다. 2006년 9월, 전후 최연소 총리로 취임했다가 1년 만에 조기 퇴진했으나, 2012년 재집권한 뒤 ‘4연임’설이 나올 정도로 승승장구했다. 재집권 뒤 여섯번의 대형 국정선거를 모두 승리로 이끌며 3연임 기간 동안 ‘아베 1강’ 체제를 굳혔다.
2013년 70%대까지 치솟았던 아베 정권 지지율은 현재 30%대로 곤두박질쳤다. 코로나19 부실 대응, 측근 비리, 도쿄올림픽 연기 등 잇단 악재가 겹쳤지만, 경제정책인 ‘아베노믹스’ 실패, 무리한 평화헌법 개정 추진, 부적절한 공금 사용 의혹 등 정권 차원의 근본적인 문제도 지지율 하락에 영향을 미쳤다.
아베 총리가 적극 추진했던 외교 정책도 진전이 없었다.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 문제, 남쿠릴열도 4개 섬 반환 관련 러시아와의 협상 등은 제자리걸음이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강제동원 피해자 등 역사문제로 촉발된 한-일 갈등은 경제 보복, 안보 불안까지 이어져 수교 이래 최악이라는 평가다.
장기 집권에 따른 폐해도 곳곳에서 드러났다. 아베 정권이 2014년 내각인사국을 새로 만들어 중앙부처 간부 인사를 장악하면서 관료가 총리관저에 아첨하는 ‘손타쿠 정치’가 횡행했다. 2017~18년 아베 정권을 흔들었던 ‘모리토모학원 스캔들’ 당시 재무성이 공문서를 변조한 것이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아베 내각에서 방위상을 지낸 나카타니 겐 자민당 중의원 의원은 <교도통신> 인터뷰에서 “(아베 총리 임기가) 너무 길어서 국민이 완전히 질리고 있다”며 “총리관저가 무엇을 해도 반응하지 않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김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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