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지난 10일 정부서울청사 중앙재난안전상황실 서울상황센터에서 열린 집중호우 대처상황 점검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기고] 이상식 | 전 부산경찰청장
기록적인 폭우로 아까운 인명·재산피해가 속출하고 수도권 주민들이 큰 고통과 불편을 겪었다. 115년 만의 폭우라고 한다. 평생 겪어 보지 못한 큰 재난을 하루 밤새 겪었던 셈이다. 이 와중에 정부와 윤석열 대통령이 국민의 생명과 재산보호를 위해 제 역할을 다 했는지를 두고 논란이 많다.
우선 윤 대통령은 기록적인 폭우로 극심한 피해와 혼란이 예상되는 데도 일과가 끝나자마자 서초동 집으로 퇴근해버렸다. 상황이 악화하여 다시 집무실로 가려고 하였으나 강남 일대의 폭우로 길이 막혀 밤늦게까지 유선으로 지시했다고 한다. 딱한 변명이다. 마땅히 집무실에서 대기하면서 지휘했어야 마땅하다. 이런 대통령의 인식과 자세는 정부 차원의 대응 미숙과 혼란으로 이어지면서 참사 수준의 피해를 낳았다.
대통령이야 그의 말대로 처음 해보는 대통령인지라 몰라서 그랬다고 치자. 참모들은 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나. 이 대목에서 특히 비판받아 마땅한 사람이 있다. 바로 재난대응 주무장관인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다. 그는 아무런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했다. 언론 보도를 보면, 그는 폭우가 시작되자 상황지휘를 위해 세종시로 내려가려고 했다고 한다. 서울에는 재난지휘 통제시설이 없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청와대에는 시설이 있었지만 개방해 버린 이후이고 대체 시설은 아직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다시 방향을 바꿔 밤늦게 총리주관 상황점검 회의에 참석했다고 한다. 보도가 사실이라면, 길거리에서 허둥대며 소중한 시간을 흘려보낸 것이다.
중앙재해대책본부장으로서 행안부 장관의 역할은 막중하다. 한마디로 전국의 모든 유관기관을 지휘하는 재난의 컨트롤타워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행정안전부에는 차관이 본부장인 재난안전본부가 설치돼 있고 행정안전부 장관의 직무 내용에도 재난대응 업무가 명시돼 있다. 또 재난안전본부는 경찰청처럼 독립된 외청이 아니라 행안부 장관 보조기관이다. 이는 재난대응의 최종적 책임은 다른 사람이 아닌 행안부 장관에게 있다는 뜻이다.
이런 막중한 책임을 고려할 때 이번 사태에 임하는 이상민 장관의 기본적인 태도와 역량을 문제삼지 않을 수 없다. 재난대응에는 평상시 준비가 중요하다. 청와대 개방으로 중앙차원의 재난 대비시스템이 공백 상태라면 주무장관으로서 당연히 대체 수단을 강구했었어야 한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보호보다 중요한 정부의 임무가 어디 있는가. 회의할 장소를 찾기 위해 세종시로 향하려 했다는 장관을 보고 실소를 금할 수 없다. 그가 평소에 재난 대응 기본계획을 한번이라도 살펴보고 관심 가졌다면, 이런 생초보 같은 판단은 내리지 않았을 것이다.
재난주무 장관이 이 모양이니 대통령 이하 윤석열 정부의 재난대응이 총체적 난국을 보인 것은 당연하다고 볼 수도 있다. 대통령은 침수가 진행되는 것을 뻔히 보고도 퇴근해서 다시 출근하지도 않았고 오세훈 서울시장도 퇴근했다 밤늦은 시각 뒤늦게 복귀했다. 마포구청장은 에스엔에스(SNS)에 먹방 사진을 올려 빈축을 샀다. 불난 집에 기름 붓는 격으로 강승규 시민사회수석은 “비가 온다고 퇴근 못하나. 대통령이 컨트롤 안해서 어떤 사고가 생겼나”는 역대급 망언을 했다. 시민들로서는 억장이 무너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정부 차원의 이런 총체적인 혼란과 뒷북 그리고 안일의 중심에는 중앙재난대책본부장 이상민 장관의 소극적 태도와 미숙함이 있다. 하긴 이미 발생한 사건에 대한 사후 판결에 종사해온 판사 출신인 그가 현재진행형인 대규모 재난 사태에 허둥대는 것은 어쩌면 별로 이상한 일도 아니다. 게다가 온통 엉뚱한 일에 정신이 팔려있었으니 비 좀 온다고 해서 신경 쓸 틈이나 있었겠나 싶다.
유독 이상민 장관에 대한 비난이 가중되는 것은 장관 직무에 임하는 그의 이중적 자세 때문이다. 그는 장관의 핵심 업무로 정부조직법에 명시된 재난대응에는 아무런 관심을 가지지 않고 사실상 방기하다시피 해 결과적으로는 엄청난 피해로 이어졌다. 그의 이런 자세는 이른바 경찰 장악을 위해 바친 그의 엄청난 충성, 헌신(?)과는 크게 대비된다.
그는 검찰과 경찰을 장악해 전 정권과 야권 유력인사에 대한 수사를 지지율 회복의 동력으로 삼으려는 윤석열 대통령의 뜻을 뒷받침하고자 온갖 비난과 반발에 아랑곳하지 않고 경찰국 설치를 추진하고 관철해 냈다. 이 과정에서 경찰관들의 사기가 전례 없이 저하되고 엄청난 분노가 표출되었음에도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쿠데타”같이 경찰관들을 자극하는 말들을 쏟아내는 결기를 보이기도 했다.
그가 ‘좌 검찰 우 경찰’의 큰 그림을 가진 윤 대통령에게 충성하기 위해 바친 에너지와 시간을 재난대응에 조금이라도 더 할애했더라면, 그래서 재난대응시스템을 정비하고 숙지해서 일사불란하게 대응했더라면, 몇명의 인명이라도 더 구하고 수천만 국민의 고통과 불편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경찰을 권력의 도구로 삼으려는 대통령에게는 그렇게 충성하면서도 정작 장관의 핵심 업무로 명백하게 규정된 국민의 생명과 안전 보호에는 실패한 이상민 장관을 어찌해야 할 것인가.
※이 전 청장 기고글과 관련해, 행정안전부는 “폭우 당시 이 장관은 세종시에 머물고 있었으며, 서울정부청사 1층에도 상황실이 설치돼 있다. 또 총리 주관 회의 전에 장관 주재 회의도 열었다. 따라서 길거리에서 허둥대며 소중한 시간을 흘려보낸다는 지적은 사실과 다르다”고 밝혀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