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왜냐면

생기부 기재로 학폭이 예방될까

등록 2023-03-27 18:16수정 2023-03-28 02:35

‘소년 보호처분’ 대원칙과 충돌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왜냐면] 심창보 | 서울특별시남부교육지원청 학교폭력 담당 변호사

3월부터 학교폭력 가해 학생 조치에 대한 학교생활기록부(생기부) 기재와 보존이 더 강화됐다. 다음달 초 학교폭력 근절대책을 발표할 예정인 정부는 생기부의 학교폭력 기록을 대학 입시에 더욱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방안을 모색한다고 한다. 생기부 기재를 더 엄하게 하는 것으로 학교폭력을 예방해보겠다는 것인데, 과연 효과가 있을까?

먼저 간단한 질문 하나. 다음 중 생기부에 기재될 수 있는 사건은 무엇일까? ①중학생이 유치원생을 때림. ②중학생이 중학생을 때림. ③중학생이 교사를 때림.

정답은 2번뿐이다. 현 법제 아래서는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의 신분에 따라서 학교와 교육청의 절차가 달라지는데, 1번은 학교생활교육위원회(옛 선도위원회, 유치원생은 학교폭력예방법 상 학생이 아니기 때문이다), 2번은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학폭위), 3번은 교권보호위원회가 개최될 수 있다. 이 가운데 학폭위 조치에 대해서만 생기부에 가해 학생 조치가 기재될 수 있다.

또한 위 3가지 사건의 가해 학생 모두에게 학교와 교육청의 절차와 별개로 법원의 소년보호재판을 통해 보호처분이 내려질 수 있는데, 이 처분 또한 범죄기록이나 생기부에 기재되지 않는다. 1963년 가정법원이 발족할 때부터 ‘소년의 보호처분은 그 소년의 장래 신상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아니한다’(소년법 제32조 제6항)는 것이 소년보호처분의 대원칙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학교폭력 가해 학생에게만 이러한 제재를 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아래와 같이 답하면서, 가해 학생 조치를 생기부에 기재하는 것은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학교폭력 관련 조치사항들을 생기부에 기재하고 보존하는 것은 상급학교로의 진학 자료로 사용됨으로써 학생들의 경각심을 고취시켜 학교폭력을 예방하고 재발을 방지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된다.”(2016년 4월28일 선고 2012헌마630 결정)

언뜻 봐서는 수긍할만해 보인다. 그런데 위와 같은 논리라면 소년보호처분을 받은 사실도, 유치원생을 때린 학생도 모두 생기부나 기타 기록에 기재해야 하지 않을까? 위 문장에서 ‘학교폭력’ 단어를 ‘범죄’, 또는 ‘소년범’이라고 바꾸면 같은 논리가 된다. “소년범의 관련 조치사항들을 생기부에 기재하고 보존하는 것은 상급학교로의 진학 자료로 사용됨으로써 학생들의 경각심을 고취시켜 범죄를 예방하고 재발을 방지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된다.”

그런데 보호처분은 소년의 장래에 영향을 미치게 하지 않기 위해 그 내용이 관련 기록에 전혀 기재되지 않는다. 따라서 위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합리적이려면 다음 두 가지 가정 가운데 하나는 참이어야 한다. ①학교폭력은 소년범의 범죄행위보다 예방과 재발 방지의 필요성이 더 크고, 학교폭력 가해 사실의 생기부 기재는 학교폭력을 예방하고 재발을 방지하는 가장 효과적 수단이다. ②애초 소년보호처분을 관련 기록에 기재·보존하지 않는 것이 잘못된 것이다.

그러나 둘 가운데 하나가 참이라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 오히려 소년범죄에 이르지 않지만, 학교폭력에는 해당하는 경우의 수가 그 반대(학교폭력이 아닌 소년범죄)보다 훨씬 많다. 헌법재판소는 생기부 기재가 학교폭력을 예방하고 재발을 방지하는 가장 효과적 수단이 된다고 설시(알기 쉽게 풀이해 보임)하면서도 그 근거에 대해서는 ‘경각심’ 이외에 별달리 언급하지 않고 있다. 학생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제도에 대해서 교육부가 면밀하고 충실하게 연구·검토하고 시행했던 것인지 의문이다. 학교폭력의 예방은 폭력이 발 디딜 수 없는 분위기와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그저 학교폭력에 대해 엄정하게 대처한다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가장 쉬운 길을 택하는 것은 아닐지?

그렇다면 소년보호처분을 생기부나 기타 기록에 기재하지 않는 소년법이 잘못된 것일까? 소년법에서 ‘소년의 보호처분이 그 소년의 장래 신상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아야 한다’는 규정은 1963년부터 현재까지 유지하며 소년보호처분의 대원칙이 되고 있다. 이 대원칙이 잘못된 것인가?

학교폭력의 예방과 피해 학생 보호는 당연히 우선시해야 하고, 이를 위해 필요한 정책을 상시 강구해야 한다. 그러나 모로 가도 서울로 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효과성과 공정성 두 가지 토끼를 모두 잡아야 하는 것이다. 특히 그것이 학생, 아동과 관련된 것이라면 더욱더 그렇다. 현재 학교폭력 관련 정책이 서울로 가고 있는 것인지, 하나의 토끼라도 잡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범죄·코믹·판타지 버무렸다…볼리우드식 K드라마의 탄생 1.

범죄·코믹·판타지 버무렸다…볼리우드식 K드라마의 탄생

상법개정 반대 ‘궤변’, 1400만 투자자가 바보인가 [아침햇발] 2.

상법개정 반대 ‘궤변’, 1400만 투자자가 바보인가 [아침햇발]

우크라이나 전쟁발 가짜뉴스에 돈 내야 할 한국 3.

우크라이나 전쟁발 가짜뉴스에 돈 내야 할 한국

감사원장 탄핵 추진에 “헌법질서 훼손” 반발하는 감사원, 어이없다 [사설] 4.

감사원장 탄핵 추진에 “헌법질서 훼손” 반발하는 감사원, 어이없다 [사설]

한 대표, ‘당게’ 논란 연계 말고 ‘김건희 특검법’ 당당히 찬성해야 [사설] 5.

한 대표, ‘당게’ 논란 연계 말고 ‘김건희 특검법’ 당당히 찬성해야 [사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