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 퇴영한 영국 스카우트 대원들이 5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의 한 호텔에 도착하고 있다. 연합뉴스
[왜냐면] 방인환 | 30대·경기 하남
지난 5일 밤 서울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스크린도어가 열리자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날 서울로 철수했다는 영국 잼버리 대원들이 지하철에 타고 있었기 때문이다. 빨간색 티셔츠에 영국 국기 색을 수놓은 스카프까지 뉴스에 나온 모습 그대로였다.
젊은 남녀가 근사한 유니폼을 입고 모여있는 멋진 모습에 잠시 시선을 빼앗겼지만, 곧 미안함과 부끄러움을 느꼈다. 열악한 환경과 상한 계란을 식사로 받은 그들에게 한국 방문은 분명 악몽이었을 것이다. 밤 10시를 넘어 11시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늦은 밤 서울을 떠도는 건 그들이 꿈꾼 한국 여행은 분명 아니었을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 젊은이들의 표정을 살피며 마음속으로 미안하다는 말을 되뇌는 것뿐이었다.
이 우연한 만남이 기분 좋은 일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저들에게 이 나라에 멋진 장소가 있고, 맛있는 음식이 있고, 좋은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릴 기회가 사라졌다고 생각하니 큰 상실감이 느껴졌다. 멋진 추억을 꿈꾸며 먼 길을 온 대원들의 마음은 더욱 어두웠을 것이다.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대회’는 지금 한국 사회를 이끄는 어른들이 젊은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생각이 확신에 가까워지는 사건이었다. 한국 청년의 행복지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최하위라는 보고서가 생각났다. 정상적인 사회는 무력한 아동이 무관심 속에 방치되는 걸 좌시하지 않는다. 무책임하고 무능력한 보호자도 용납하지 않는다. 아동을 제대로 보살피지 않는다면 보호자 자격을 박탈해 버린다. 그동안 뭘 했는지 뒤늦게서야 책임지고 대회를 이어 나가겠다는 한국 정부의 발표에도 철수를 결정한 참가국의 선택은 보호자로서 그들이 당연히 해야 할 결정이었을 것이다.
한국의 젊은 사람 상당수가 불행하다고 한다. 어려운 환경에 놓인 사람도 많다. 그런데 그들을 지키겠다며 책임지고 나서는 지도자가 보이지 않는다. 이 세상의 나쁜 것으로부터 젊은이들을 떼어 놓겠다는 과감한 결단도 아직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잼버리에서 자국 아동을 철수시키는 외국의 과감한 선택이 의미 있게 다가온다. 한국은 젊은이들을 고통에서 구해낼 시간을 점점 잃고 있는 건 아닐까? 어른들은 진정 우리 미래 세대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있긴 한 건가? 2023 잼버리는 우리가 보호자로서 자격을 상실한 사건은 아닌가 생각해 봐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