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조합원들이 2020년 11월24일 오후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당사 앞에서 산재로 사망한 99명의 영정을 의자에 놓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요구하는 집회를 하는 모습.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문윤수 | 대전을지대병원 권역외상센터 교수
“20대 청년, 트럭에 등, 골반 깔렸습니다. 혈압 낮습니다.”
이른 아침 권역외상센터 핫라인으로 구급대원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린다. 10여분 뒤 도착한 청년 상태는 심각했다. 심한 골절에 복부 내부 장기 손상에 출혈도 있다. 말 그대로 촌각을 다투는 중증외상환자다. 골반 깊숙한 혈관 출혈은 혈관 색전술을, 복부 장기 손상은 응급수술을 시행했다. 중환자실로 옮겨 안정시킨 뒤 골반 골절 수술을 시행했다. 며칠에 걸쳐 청년에게 5천㏄ 수혈이 들어갔다. 성인 남성 전체 혈액량이 약 5천~6천㏄임을 고려하면 몸 전체 혈액이 빠져나가 새롭게 수혈받은 것과 같다. 청년에게 권역외상센터 모든 의료진이 최선을 다했다. 다행히 환자는 잘 견뎌줬고 회복하고 있다.
청년이 중환자실에서 회복할 시점에 누군가 말했다. “이 청년, 지난봄 ㄱ환자와 같은 회사에서 사고 난 거 아세요?” 순간 말할 수 없는 분노가 치밀었다. 지난봄 ㄱ환자는 새벽에 차와 벽 사이에 몸통이 껴서 왔다. 뱃속 여러 장기가 터지고 피가 쏟아졌으며 골반도 으스러졌다. 청년보다 두 배 더 수혈했고 더 오랜 기간 중환자실에 있었고, 여러 번 수술했다. 사고 소식을 듣고 가족은 250㎞ 거리를 울면서 달려왔다. 너무 억울해하는 가족은 사고 동영상을 보여줬다. 누가 봐도 사고를 막을 시간과 방법들이 동영상에 담겨 있었다. 이 청년도 같은 회사에서 같은 이유로 사고가 난 것이 분명하다. 같은 회사에서 봄과 가을에 판박이 같은 사건이 발생한 자체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두 환자 모두 권역외상센터가 아니었다면 절대 살 수 없는 환자라고 단언한다.
중대재해처벌법은 경영자 스스로 위험을 줄일 노력을 강제하기 위해 제정해 2022년 1월부터 50인 이상 사업장에서 시행하고 있다. 내년 초 50인 미만 사업장까지 확대 적용할 예정이지만, 최근 정부와 여당이 적용을 유예하려 한다는 기사를 봤다. 외상외과의사로 10년 이상 일해오며 과연 중대재해처벌법이 실효가 있는지 피부로 느껴지지 않는다. 다만 사고 뒤 회사 관계자들이 권역외상센터 앞으로 달려오는 속도가 빨라졌다. 사고 환자 걱정보다 그들은 전화기로 상부에 보고하기 바빴다. 법에 문외한이라 법 세부 규정은 자세히 모른다. 단지 이 법 취지는 경영자가 처벌이 두려워 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평등한 목숨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로 필요하다고 알고 있다.
홀로 작업하다가 사망한 고 김용균씨 사건 발생 5년 만에 원청 업체에 대해 무죄를 확정한 대법원 판결을 봤다. 지난 무더운 여름, 법원 앞에서 피켓을 들고 호소하던 김용균씨 어머니의 슬픈 모습도 봤다. 나는 산재 사고로 안타까운 죽음에 내몰리거나 죽음의 문턱에 있는 환자의 가족들을 자주 만난다. 김용균씨의 어머니, 산재 사고 가족들 모두 다 같은 마음이다. ‘미리 막을 수 있는 사고를 왜 막지 못하는가?’
권역외상센터는 예방가능사망률을 낮추는 것이 최종 목표다. 예방가능사망률이란 적절하게 치료받지 못해 사망한 중증외상환자 비율을 말한다. 2000년대 초반에 30%이었으나 전국에 권역외상센터를 연 뒤 점차 낮아져 2019년 조사에서는 15.7%로 대폭 개선됐다. 매년 중증외상환자 수백 명의 목숨을 더 살린 셈이다. 권역외상센터는 예방가능사망률 0%를 목표로 하지 않는다. 불의의 사고를 당한 중증외상환자가 권역외상센터로 내원해 빠르고 최선의 치료로 목숨을 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같은 이치로 중대재해처벌법도 경영자 처벌보다 기본 안전관리를 지켜 막을 수 있는 사고를 줄이는 게 목적이다.
권역외상센터에서는 촌각에 달린 생명의 치료에 시간과 날짜를 미루는 유예가 절대로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 마찬가지로 중대재해처벌법을 논하며 ‘유예’ 단어를 계속 사용한다는 것은 안타까운 목숨, 누군가의 가족이 하나씩 사라지는 결과를 만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