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용균씨 5주기를 이틀 앞둔 9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열린 5주기 추모식에서 김씨의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대표를 비롯한 추모위 관계자들이 합창하고 있다. 연합뉴스
꼭 5년 전인 2018년 12월11일 새벽, 한 청년 노동자가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진 채 발견됐다.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던 스물네살 김용균씨였다. 주변에 동료가 한명만 있었더라면 기계를 멈춰 목숨을 구할 수 있었겠지만, 그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입사 3개월차 신입 노동자 홀로 위험한 작업을 하다 참변을 당한 것이다.
그의 죽음은 우리 사회에 ‘위험의 외주화’라는 묵직한 화두를 던졌다. 이후 산업재해에 대한 원청의 책임을 강화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김용균법)이 국회를 통과하고, 경영책임자에게 사업장의 안전 확보 의무를 지운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됐다. 그러나 여전히 황망한 ‘일터의 죽음’이 끊이지 않고 있어 안타까움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여당은 재계의 주장만 수용해 중대재해처벌법을 오히려 후퇴시키려 하고 있다. 5년 전 청년 노동자의 참혹한 죽음을 통해 얻은 교훈을 이렇게 무위로 돌려도 되는 건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중대재해처벌법은 경영책임자가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소홀히 해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엄한 법적 책임을 물어, 경영자가 스스로 위험을 줄일 방안을 찾도록 하자는 취지로 2021년 1월 제정됐다. 당시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는 국회 본관 앞에서 농성을 하며 한달 가까이 곡기를 끊었다. 그는 단식농성을 하면서 주변에 “이 법이 통과된다고 용균이가 살아오는 것도 아니지만, 나 같은 엄마는 다신 없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제정 1년 뒤인 2022년 1월부터 시행됐다. 그러나 50명 미만 사업장은 2년의 유예기간을 둬 2024년부터 적용하기로 했다. 법 제정 뒤 도합 3년간의 준비 기간을 준 것이다. 노동부 자료를 보면 지난해 644명이 산재로 숨졌는데, 이 중 60%가 50명 미만 사업장의 노동자였다. 상당수 일터의 죽음을 사실상 방치하는 ‘반쪽 법’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럼에도 정부·여당은 최근 중대재해처벌법 확대 적용을 또다시 2년간 유예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더불어민주당도 유예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여당 시절 입법을 주도한 정당으로서 무책임한 태도다.
지난 9일 열린 김용균 5주기 추모대회에서 시민들은 “일하다 죽지 않게, 차별받지 않게”를 외쳤다. 정치인이라면 당연히 수용해야 할 상식적인 요구다. ‘모두가 안전하게 일할 권리’, 언제까지 유보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