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철 ㅣ 충남연구원 사회통합연구실장
우한에는 8년 전 다녀온 적이 있다. 1938년 10월10일, 지금의 우한으로 합병된 중국 임시수도 한커우에서 창립된 조선의용대의 발자취를 찾기 위해서였다. 일제가 상하이, 난징, 베이징을 넘어 대륙 안쪽까지 침략해 오자 그곳으로 피해 들어온 김원봉, 윤세주 등 조선민족혁명당 독립운동가들은 국공합작의 장제스(장개석), 저우언라이(주은래) 등의 도움을 받아 전투부대인 조선의용대를 창립한 것이다.
한커우의 상공회의소에서 창립된 조선의용대는 일제가 우한까지 침략해 오자 그곳에 남아 끝까지 싸우다 다시 충칭을 거쳐 남쪽 구이린까지 피신하기도 했다. 중국 군대보다 오래 남아 우한을 지키며 일제와 끝까지 싸우는 모습을 본 중국의 대문호 궈모뤄(곽말약)는 조선인의 강인한 투쟁과 독립정신을 높이 칭찬하기도 했다.
우창봉기의 유적지도 방문했다. 1911년, 쑨원(손문)은 ‘천하위공’(세상은 모든 이의 것)의 이념을 바탕으로 구체제인 청나라를 뒤엎고 중화민국이라는 새로운 나라를 건설했다. 신해혁명이다. 그 신해혁명의 도화선이 우창에서 일어난 무장봉기다.
우한은 이러한 역사의 우창, 한커우 그리고 한양 세 도시가 합병되어 만들어진 중국 중부의 거대 거점도시이다. 중부지역 교통의 중심이자 인재들이 모이는 교육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내가 아는 훌륭하고 유능한 다수의 중국 선생님과 친구들도 이 지역 출신들이다.
이번에 특별기를 타고 고국으로 돌아온 우한 교민들은 독립운동을 한 것은 아니지만 중국에서 나름 한국을 대표해 많은 역할을 하신 분들일 것이다. 갑작스러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침입으로 봉쇄된 도시에서 얼마나 공포와 두려움을 느꼈을 것인가. 과장처럼 들리겠지만, 일제에 의해 느닷없이 도시가 함락되자 오도 가도 못한 소시민의 공포와 두려운 심정이 들진 않았을까. 그래서인지 귀국한 이분들을 더 살뜰히 맞이하자는 생각이 든다.
충청도는 충절과 예절의 본향이자 포용의 역사를 간직한 고장이다. 그중 충남은 독립운동가를 가장 많이 배출한 고장이기도 하다. 대내외적으로 긴급 상황이다 보니 절차상 혼선이 없지는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포용의 마음으로 우한 교민을 따뜻하게 맞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사회관계서비스망으로 퍼지고 있는 “힘내라 우한”, “우리가 아산이다” 라는 손팻말이 그래서 더 반갑다. 어려운 상황에서 고국으로 들어온 그들의 마음도 녹아들 것이다. 중국 우한, 그리고 우리 교민 모두 힘내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