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수 ㅣ 서울남산초등학교 교장
사스, 메르스에 이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국내에 유입되어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지난달 20일에는 국내 첫 확진 환자가 발생하기도 하였다. 물론 정부 당국은 보이지 않는 곳곳에서 방역과 예방을 위해 애쓰고 있었을 것이다. 대통령께서도 ‘과하다 할 정도로 선제 대응’하라 지시하였음에도 정부 당국의 태도는 미온적으로 보인다.
감염병은 천재지변만큼 위험하다. 지하철을 타보면 대부분의 사람이 마스크를 끼고 있지만, 이는 한편 더 불안감을 증폭시키기도 한다.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는 사람들은 이러한 공포감을 모를 것이다. 이 와중에 미세먼지 저감을 위한 차량 2부제를 적극 실시하라는 공문도 학교로 온다. 손씻기, 기침 예절을 강조하는 홍보도 넘쳐난다. 개인위생을 철저히 해야겠지만, 감염되면 위생에 철저하지 못한 네 탓이라는 느낌마저 든다.
무엇보다도 개학을 앞둔 학교는 대혼란에 빠졌다. 개학을 연기할 것인가, 말 것인가로 온종일 고민하였다. 교육청에서는 개학 연기와 학교 휴업 권고를 검토 중이라고 하였고, 일부 언론에서는 개학 연기와 휴업이 결정된 듯 보도하기도 하였다. 결국, 개학 연기와 휴업 권고 검토는 관련 정부 당국 간 협의 끝에 철회되었다.
개학을 앞두고 소수 학교만 문을 닫았고, 나머지 학교들은 불안에 떨며 학교를 열었다. 개학한 학교에는 학부모들의 민원이 이어졌다. 학부모들은 아이들이 감염되면 학교가 책임질 것이냐며 당장 휴업할 것을 요구하였다. 학생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되면 학교가 책임을 어디까지 질 수 있을지 의문이 들지만, 학부모들의 요구도 외면할 수 없다고 본다. 그렇다고 학교가 무턱대고 개학 연기나 휴업을 결정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학교는 법에서 정한 수업일수를 준수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학년 말에 이 같은 사태를 맞이했다. 우리나라 학기는 3월에 시작된다. 이는 법정 수업일수를 2월 내에 마치고 새 학년이나 상급 학교로 진급시켜야 함을 의미한다. 만약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유행병으로 마냥 휴업한다면, 법정 수업일수를 준수할 수 없게 되어 학사일정 파행은 불가피하게 된다.
수업일수나 학사일정보다는 학생과 교직원의 생명이 우선되어야 함은 당연하다. 더구나 유치원이나 초등학교는 어린 학생들이 모여 있다. 많은 학생이 한데 모여 수업도 하고 급식도 한다. 게다가 생리현상도 처리한다. 상황에 따라서는 정부 당국의 조처를 기다릴 수 없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최소한 학교라는 공간에서는 감염병과 관련한 유연한 조처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수업일수를 비롯한 관련 규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법정 수업일수에 대한 예외 규정은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45조(수업일수)에 규정되어 있다. 이에 따르면 학교장은 천재지변, 연구학교, 같은 법 105조에 따른 자율학교 운영 시에 법정 수업일수(190일)의 10분의 1 범위 내(19일)에서 수업일수를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 감염병 관련 규정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물론 교육부의 ‘학생 감염예방 위기대응 매뉴얼’에 따르면, 국가 위기경보 ‘경계’ 단계부터 학교장은 지역 보건소와 협의를 거쳐 휴업을 추진할 수 있으나, 법정 수업일수 준수를 전제하고 있다. 교육감도 특정 지역에서 학교 내 유행이 확산되는 경우, 학교에 휴업 또는 휴교령을 내릴 수 있다. 이때에도 보건복지부 장관 등과 협의를 거쳐야 한다. 마지막으로 국가 위기 ‘심각’ 상태일 때에는 교육부 장관이 휴업 또는 휴교 명령을 내릴 수 있다.
얼핏 상당히 체계적인 듯 보이지만, 감염병 유행이 폭발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국가 위기 관심-주의-경계-심각 단계를 따져가며 대응해야 한다. 이 단계에 따라 감염병 통제는 학교나 가정에 맡겨진다. 그 과정에서 예기치 않은 학교 내 감염이 확산될 가능성도 크다.
그래서 학교는 목숨을 위협할 수 있는 감염병이 발생하여도 개학을 미루거나 휴업을 신속히 결정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따라서 치명적인 감염병이 유행할 경우, 학교 구성원 협의와 지역사회 전파 상황을 고려하여, 학교가 자율적으로 휴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법정 수업일수 관련 법령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상황에 따라 법정 수업일수의 10분의 1 범위를 넘어 최대 10분의 3까지의 감축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앞으로도 전 세계적인 감염병이 유행할 가능성이 크다. 전파 속도도 교통 발전 속도에 맞춰 더욱더 빨라질 것이다. 학생과 국민의 소중한 생명 보호 및 감염병 예방과 확산 방지를 위하여 ‘치명적인 감염병이 유행할 경우’에 수업일수를 감축할 수 있도록 초·중등교육법을 포함한 관련 법령을 하루빨리 개정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