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준 ㅣ 작가·<메이지 유신이 조선에 묻다> 저자
2012년 7월16일 도쿄 요요기 공원. 이날 여기서는 ‘사요나라 원전, 10만 집회’가 열렸다. 3·11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 이후 계속된 일본 정부의 실책에 항의하는 집회였다. 일본에서 열린 집회로는 매우 예외적으로 17만명이 모인 이날,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오에 겐자부로는 노구를 이끌고 나와 이렇게 외쳤다.
“우리는 모욕 속에 살고 있다.”
<영속패전론>이란 책으로 제35회 ‘이시바시 단잔상’과 제12회 ‘가도카와재단 학예상’을 수상한 작가 시라이 사토시 역시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 사고(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계기로 일본 사회는 그 구조의 민낯을 드러냈다. 일본 국민은 어떤 권력의 통치를 받으며 살아가는지 명확해졌다. 슬프게도 그 구조는 ‘모욕’이라는 말 말고는 다른 표현이 없다.”
그런데 이러한 모욕은 일본인만 받고 있는 것이 아니다. 아베 신조 총리는 오는 7월 열리는 도쿄올림픽에서 후쿠시마산 농산물을 선수단 식자재로 사용하겠다고 하고, 후쿠시마 근처에서 야구 등의 경기를 치르며, 심지어 원전의 방사능 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는 사실상 일본인뿐만 아니라 한국인과 전 세계인에 대한 모욕이다. 그것도 매우 위중하고 심각한 모욕이다.
그런데 세계인에 대한 아베 정부의 모욕은 후쿠시마 관련 사태에서 그친 것이 아니다. 3700여명이 타고 있는 대형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에 대한 아베 정권의 하선 금지 명령은 또 한 차례의 중차대한 모욕행위였다. 이 배에는 일본인만 타고 있는 것이 아니다. 한국 국적 14명을 포함해 수십개국의 국민이 승선해 있다. 이 배의 코로나19 감염자 국적만 해도 18개국에 이른다.
이런 다국적 승객이 타고 있는 배에 대해 아베 정부는 일체의 하선 금지 명령을 내리고 배에 가뒀다. 이는 모욕적인 행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실상 타국민에 대한 심각한 인권유린 행위로 불법적 감금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런 극단적인 격리 조치에도 불구하고, 크루즈선과 아무런 상관 없이 일본 전역에서 코로나 환자가 발생했고 사망자까지 나왔다. 그제야 아베 정권은 각국 정부의 자국민 수송을 허락했다. 국제사회가 아베에게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할 사안이다.
코로나 감염자와 다른 승객 간의 접촉을 시급히 막아야 했음에도 이들을 모두 한배에 가둬놓은 아베 정부의 황당무계한 결정, 그 발상은 과연 어디에서 유래했을까?
날이 밝아 눈만 뜨면 전투가 벌어졌던 무로마치시대와 전국시대를 몇백년 동안 거친 일본에는 ‘센진쿤’(전진훈)이라는 것이 있다. 전쟁에서의 마음가짐을 담은 훈계다. 그런데 센진쿤의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옥쇄, 즉 자결이다.
청일전쟁 당시 일본 제1군 사령관으로 조선 침략의 선봉에 섰던 야마가타 아리토모는 1894년 8월13일 평양에서 ‘포로가 되느니 차라리 깨끗하게 죽어서 일본 남아의 기상을 나타내어 명예를 다하라’는 훈령을 내렸는데, 이것이 ‘살아서 굴욕을 겪느니 자결한다’는 전쟁 수행 일본군 정신의 원형이 되었다.
조슈번 하급 무사 출신으로 메이지 유신에 가담했던 야마가타 아리토모에게는 사무라이들의 무사도, 즉 ‘이름을 부끄럽게 하지 말라’는 ‘나오 오시무’ 정신의 강요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이후 이 센진쿤은 태평양전쟁에서의 총원 옥쇄로 나타났다. 1943년 5월29일 애투섬 전투에서는 옥쇄 명령으로 약 2600명이 자결했다. 이를 전한 <아사히신문>에는 ‘열렬히 센진쿤을 실천하다’라는 제목이 붙었다.
과도한 비유일지 모르지만, 크루즈선 승객들을 바다에 감금하는 놀라운 결정을 보며 ‘옥쇄 명령’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평화헌법 개정으로 전쟁국가의 길을 열겠다는, 군국주의 망령에 사로잡힌 정부가 아닌가. 타국민의 인권과 배려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아베 정권이야말로 ‘불가역적인 미성숙국가’가 아닌지 스스로 되돌아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