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헌 ㅣ 화가, 4·16재단 이사장
나의 이름 ‘코로나19 바이러스’는 문명을 자랑하는 인간 종들이 붙인 이름이다. 그들은 처음에 ‘우한 폐렴’ 등 갖가지 이름들을 들이댔지만 나는 적어도 국제적 활동을 하는 바이러스다. 그래서 이 이름이 좋다. 나는 작년부터 중국의 우한 지역에서 활동했는데 그 지역이 뭔가 조짐이 좋지 않아 거기보다 더 좋다는 옆 나라 대한민국이나 일본 등으로 우리의 활동 영역을 옮겨 가는 중이다.
인간이라는 종은 우리 바이러스와 달리 글로써 소통도 하고 말하고 상상하면서 문명을 이루어 왔다고 늘 자랑한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나 같은 바이러스에는 인간들도 치명적 약점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세계는 곧잘 믿지만 보이지 않는 세계는 그들로서도 어떻게 할 수가 없는 모양이다. 그래서 그들은 항상 종교나 예술을 통해 다른 세상을 꿈꾼다고 떠든다.
우리는 마침 중국 우한에 있던 몇 사람들이 한국으로 들어갈 때 같이 따라 들어왔는데 와서 보니 그야말로 우리가 활동하기 딱 좋은
‘새누리’가 눈앞에 전개되는 게 아닌가. 거기에 더해 우리가 보기에도 우리의 숙소(인간들은 이를 “숙주”라고 부른다)로 정하기에 비할 데 없이 좋은 종교집단이 있는데 그 이름도 마침 ‘신천지’다. 이들은 다 장막을 치고 성전까지 만들어 우리를 환대한다.
사실 우리는 인류의 역사와 맞먹는 유구한 역사를 지닌 생명체라고 자부한다.
우리는 몇만년 전 인류들의 선조라고 할 수 있는 ‘네안데르탈’인과 ‘크로마뇽’인들이 공생하던 시기에 네안데르탈인들에게 여러가지 변장을 하고 침투해 그들을 지구상에서 멸종시킨 바도 있다. 그때로부터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그들이 멸종된 것은 다 우리에 의해 그리된 것이라고 상상한다.
우리는 종교집단을 선호한다. 그중에서도 그들 사이에서 이단이라 불리는 종교집단을 더욱 좋아한다. 그들은 항상 노출되는 것을 꺼리고 은폐하거나 숨어서 그들의 종교행사를 치르기 때문에 우리들의 ‘포교활동’에 더없이 안성맞춤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꼭 붙어 앉아 예배를 드리기 때문에 우리들이 옆 사람에게 건너가기란 누워서 떡 먹기나 마찬가지다. 거기다가 그들은 자주 침을 튀겨가며 기도를 드린다. 그들과 우리의 포교 행태는 비슷하다. 일례로 그들은 다른 종교집단에 몰래 숨어들어가 이쪽으로 끌어오는데, 이를 ‘추수’한다고 한다. 우리들이 사람 몸속에 몰래 숨어들어 그 몸을 낚는 바와 똑같다. 그와 우리는 ‘도플갱어’다. 우리들은 또한 침을 튀겨가며 싸움질하는 정치인들이나 그들이 내뱉는 말(혐오) 속에 몰래 숨어들어 포교하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우리들은 아직 거기까진 활동을 유보하고 있다. 곧 그들의 침 속에 숨어들어 그들을 우리들의 힘, 코로나바이러스로 포교(침투)하게 될지도 모른다. 침 튀기며 떠드는 자들이여!
지금은 신천지 교인들이 예배를 본 대구 지역에서 맹렬히 활동하고 있지만 그렇게 우한처럼 포교활동이 여의치는 않다. 그들은 검역이라는 이름으로 있는 사력을 다해 우리들을 찾아내고 있다. 우리들도 막강한 포교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들의 조직적인 검역의 힘을 당해낼지 지금은 매우 우려스럽다.
그렇지만 우리는 대형교회라는 커다란 빽(뒷배)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엄청난 수가 모여 일주일에 한번씩 설교 듣고 기도하고 찬송하는 ‘교회’라는 성소를 너무 좋아한다. 이 교회에 대해서는 예수의 쌍둥이 형제인 도마를 통해 “교회를 짓지 말라”고 했다는데, 예수를 보지도 못한 고집 센 바울이 신도를 모으기 위해 안디옥인가 어디서부터 교회 모임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것까지는 우리도 알고 있는 바다. 그런데 천만의 말씀이다. 앞으로 그들이 우리의 숙소가 될 터인데 교회가 없으면 우리는 어떻게 하라는 말씀인가? 기다리시라, 우리가 간다.
이들 외에도 우리들의 뒷배를 봐 주는, 가짜뉴스를 양산하는 보수 언론매체들과 정치세력들이 있다. 그들이 있어 우리들은 항상 든든하다.
몇십년 전에 조제 사라마구는 노벨 문학상까지 받은 <눈먼 자들의 도시>라는 소설을 쓴 적이 있다. 바이러스 계통으로 눈먼 자들이 생겼기 때문에 우리들도 알고 있는 내용이다. 거기에는 이 눈먼 자들이 그들끼리 연대의식을 발휘해 엄청난 고통을 극복하는 과정이 나온다. 그 눈먼 자들은 앞이 보이지 않아도 그들의 상상력으로 이를 극복한다고 한다.
알베르 카뮈라는 소설가는 ‘페스트’를 주제로 소설을 썼다. 쥐를 통해 전파되는 페스트는 우리보다 더 무섭다고 한다. 이런 문학 나부랭이들의 결론은 보나 마나 해피엔딩이다. 항상 인간들에게 우리 바이러스를 이길(퇴치)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용기와 희망’을 전파해서 우리들로선 정말 골칫거리다.
지금 대구 지역에서 활동하는 우리 바이러스들한테서 급하게 구조 요청이 온다. 여기 대구에서는 인간들이 서로를 도와주면서 너무 연대를 잘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그들로서는 기쁘겠지만 우리로서는 불쾌한 얘기가 아닐 수 없다. 그들은 부족한 의료요원들이 생길라치면 전국에서 그를 돕겠다는 의료인들이 떼거리로 몰려온단다. 여기저기서 대구를 지원하기 위해 난리란다. 인간들의 연대의식과 협동정신은 우리들의 활동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앞날을 낙관하고 있다. 바로 옆 나라인 일본이라는 황금 영역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인간 종들이 만들어 놓은 올림픽이라는 인류의(?) 체전을 눈앞에 두고 있다. 그들은 그것을 성사시키기 위해 우리들이 창궐하는 포교활동을 될 수 있는 대로 숨기고 있다고 한다. 그들의 숨김은 우리들에게는 좋은 먹잇감이다. 그들이 감출수록 우리들의 포교활동은 그 감춤 속에 스며들 수 있고 한꺼번에 창궐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을 숨겨주고 드러내기를 두려워하는 아베 일본 총리나 그 우익 측근들은 우리들의 질 좋은 우군이다. 아니, 그들은 우리들의 숙주다.
우리들의 활동 폭은 일본만이 아니다. 항상 침을 튀겨가며 연설을 해 대는 미국의 트럼프도 우리의 자랑스러운 친구(그는 쩍하면 외국의 대통령을 ‘친구’라고 부른다)다. 우리는 미국이 주도해 만든 ‘세계화’에 따라 전세계에 진출하기 위해 진력을 다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들의 포교활동은 인간들의 자업자득이다. 그동안 그들은 이 세상을 얼마나 오염시켜 왔는가! 이는 스웨덴의 작은 소녀 툰베리가 잘 지적하고 있지 않는가.
이제 곧 따뜻해지는 봄이 온단다. 온도가 오르면 우리들 활동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기 때문에 우리들도 물러가야 할 때가 올지 모른다. 우리들을 힘들게 하는 ‘마스크’도 뒤집어쓰고 있으니 포교활동하기가 쉽지 않다. 자, 다들 여기서(한국) 떠날 준비를 하자.
편집자 주: 김정헌 화백의 투고입니다. 김 화백은 “글깨나 쓴다는 김정헌(그는 아직까지 우리에게 포섭돼 있지 않다)을 빌려 인간 세상을 ‘나,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눈으로 본 알레고리”로서, 모두의 안녕을 소망한다며 글을 투고해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