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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과밀’과 ‘사회적 거리’ / 조재성

등록 2020-04-01 18:36수정 2020-04-02 02:36

조재성 ㅣ 서울시립대 겸임교수·원광대 명예교수

정세균 국무총리는 3월21일 ‘사회적 거리두기’ 담화를 발표했다. 코로나19로 인해 국민들의 일상이 사라지고 학생들은 학교에 가지 못하고 있다지만, 정부는 더 오래 ‘사회적 거리두기’ 준수를 호소했다.

인류의 문명에서 질병은 도시의 형태를 규정지어왔다. 런던의 공공시설국이나 19세기의 위생처리조직 같은 도시를 관리하는 기술은 콜레라 같은 공중위생을 위협하는 질병의 발생에 대처하면서 발전해왔다. 코로나19도 인류의 도시 내 생활 양식을 바꾸고 있다. 요즈음 사회의 화두는 ‘과밀을 낮추어 접촉을 줄여라’로 요약된다. ‘밀도’와 ‘거리두기’ 간의 긴장은 공공공간에만 한정되는 게 아니다.

우리의 문명이 ‘사회적 거리두기’를 자양분으로 발전할 것인가, 아니면 ‘과밀’을 기반으로 흥미진진한 도시 문명을 계속 구가할 것인가는 코로나19 이후 ‘뉴노멀’을 예측하는 중요한 시금석이 되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사회적 경기후퇴의 원인이다. 사회적 접촉의 붕괴로 인해 피해를 보는 계층은 고립과 외로움에 상처받기 쉬운 노약자나 장애인 같은 사람들이다. 이러한 사회적 거리두기의 시기에 소셜미디어는 최소한도로 우리에게 관계 맺을 기회를 주고, 사회적 고립의 느낌을 줄여준다. 그러나 스마트폰의 액정화면만으로 살아갈 수는 없다. 소셜미디어는 물리적 세계가 제공하는 햇살, 미풍의 감미로움, 군중 속에서 느끼는 나만의 존재감, 시카고 밀레니엄 파크에 설치되어 있는 ‘빈’ 같은 엄청나게 커다란 조형물을 만질 때의 감동을 전달하지 못한다.

‘과밀’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집중하는 콤팩트한 지역이 형성되고, 그 안에서 사람들은 걷거나, 자전거 혹은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해 일터까지 이동해 간다. 또한 ‘과밀’은 젊은이들을 개방된 공원에 끌어모아 록 콘서트를 열게 하고 도시에 에너지를 불어넣는다. 네덜란드 건축가인 렘 콜하스는 맨해튼의 초고밀도를 찬양하며, 그것을 “과밀의 문화”라고 불렀다.

코로나19는 사회공동체에 관한 가장 기본적인 아이디어인 도시생활을 기초에서부터 잠식해 붕괴시키고 있다. 도시의 거리, 공유주택, 공공공간에 대한 개념은 일종의 ‘집합적 생활의 선호’에서 진화해왔는데, ‘집합적 생활의 선호’는 우리가 모두 함께 있다는 느낌을 갖도록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팬데믹은 ‘집합적 생활의 선호’를 먹이로 끊임없이 번창한다. 코로나19는 반도시적이며, 군집하려는 우리의 충동을 자양분으로 삼는다. 이에 대한 우리의 대응 ‘사회적 거리두기’는 상호교류를 원하는 우리의 열망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며, 또한 도시, 광장, 지하철, 초고층 건물을 건설해온 인류의 도시문명 배치 방식에도 역행한다.

도시문명은 집합적으로 점유되었을 때 생기가 돌도록 디자인되었다. 많은 도시 시스템이 타당하게 작동하기 위한 적정 밀도의 확보는 미덕이었지 혐오의 대상은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 물리적 근접성이 팬데믹의 위험을 가져오면서 도시밀도가 갖고 있는 미덕은 하루아침에 악이 되었다.

사회적 거리두기에 대한 긴급성은 관광객으로 붐비던 경복궁 마당을 텅 비웠으며 종교시설, 체육시설, 유흥시설에 접근하는 것을 금지시켰고, 전국의 초·중·고·대학의 캠퍼스가 문을 닫게 했다. 아마도 가까운 미래에 우리는 ‘과밀’의 즐거움과 작별을 고해야 할지 모른다. 도시의 활력은 우리 문명의 위대한 특징 중의 하나이지만 그것이 인간의 생명보다 우선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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