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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민간병원 덕분이라는 거짓 / 김윤

등록 2020-04-13 18:24수정 2020-04-14 02:40

김윤 ㅣ 서울대 의대 교수·의료관리학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우리나라의 성공적 대응에 많은 나라들이 칭찬을 아끼지 않고 있다. 우리가 평소 선진국이라고 부르는 미국과 유럽의 국가들이 한국식 ‘드라이브스루 검사’를 도입하는가 하면 적극적인 확진 검사와 함께 조기에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력하게 실행한 우리나라의 코로나19 대응 방법을 본받으려는 나라도 적지 않다.

하지만 눈앞의 성공에 취해 있기에는 아직 엄중한 상황이다. 코로나19 백신이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 내년 초중반까지는 코로나19로 인한 대규모 감염의 위험은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대응에 대한 냉철한 중간평가를 바탕으로 코로나19와의 장기전에 대비해야 한다.

코로나19의 성공적 대응에 편승해서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을 얹는 식의 주장이 난무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이탈리아와 영국처럼 공공의료가 강한 나라에서 환자가 대량으로 발생해 의료체계가 위기상황에 처하니 감염병 진료에 공공의료보다 민간의료가 더 우월하다는 근거 없는 주장도 난무하고 있다.

사족이지만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코로나19 치명률이 우리나라보다 높은 이유는 우리나라 민간병원이 유럽의 공공병원에 비해 환자를 더 잘 치료해서가 아니다. 진짜 이유는 우리나라는 젊은 환자가 많은 반면 이탈리아나 스페인은 노인 환자가 많기 때문이다. 연령 구조를 보정하면 우리나라와 스페인의 치명률은 거의 차이가 없고 이탈리아의 치명률도 우리나라의 약 2.5배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의 코로나19 대응은 환자 발생을 막는 방역과 발생한 환자를 치료하는 감염병 진료로 구분해서 평가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방역은 성공적이었으나 감염병 진료가 잘되었다고 하기는 어렵다. 환자가 대량으로 발생한 대구·경북에서는 병상이 부족해 확진 후에 입원을 기다리다 여러 명이 사망했고, 환자 4명 중 1명은 다른 지역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고등학생이 코로나19 확진 검사 결과를 기다리다 폐렴 치료 시기를 놓쳐 사망하는 안타까운 일도 벌어졌다. 대구·경북은 종합병원과 병원 27곳에 약 4만개의 병상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5천명 정도(경증환자 제외)의 코로나19 환자도 제대로 수용하지 못한 것이다.

분석 결과 전체 병상의 10%에 불과한 공공병원이 코로나19 환자 4명 중 3명을 진료한 반면, 전체 병상 중 90%를 보유한 민간병원은 나머지 1명만 진료하는 데 그쳤다. 평소 질이 떨어지고 적자를 낸다고 찬밥 취급을 받던 공공병원이 위기 상황에서 진가를 발휘한 것이다. 전국적으로 살펴봐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코로나19 환자의 치명률이 계속 높아져 가는데도 서울대병원을 제외한 이른바 ‘빅5’ 병원에서 진료받은 환자는 채 10명이 되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요약하면 대구·경북에서 병상이 부족해 환자가 사망하거나 다른 지역 병원으로 이송될 수밖에 없었던 근본 이유는 병상을 즉각 동원할 수 있는 공공병원은 병상이 부족했던 반면, 대부분의 병상을 보유한 민간병원은 코로나19 환자에게 병상을 내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코로나19와의 장기전에서 승리하려면 대규모 환자 발생에 대비하여 즉각 병상을 동원할 수 있는 감염병 진료체계를 갖춰야 한다. 감염병 진료체계가 있어야 코로나19 감염 위험을 낮추면서도 정상적인 사회경제활동을 다시 시작하는 ‘생활방역’도 가능하다.

우선 중앙정부는 민간병원 병상을 동원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고, 시도는 지역별로 예측되는 환자 발생 규모에 따라 공공병원과 함께 민간병원의 병상을 체계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 계획을 세워야 한다. 사망환자를 줄이려면 중증환자 수에 맞게 중환자실 병상과 인공호흡기를 따로 확보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70개 진료권 중 제대로 된 공공병원이 없는 17개 진료권에 공공병원을 확충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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