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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코로나가 과학기술정책 수립에 주는 교훈 / 호원경

등록 2020-05-04 18:23수정 2020-05-05 02:07

호원경 ㅣ 서울대 의대 교수

국민이 코로나19 동향 파악에 촉각을 곤두세운 100일 넘어가고 있다. 성공적인 방역으로 세계의 찬사를 받는다는 뉴스가 이어지는 보며 내심 으쓱하기도 하지만, 코로나 이후의 세계는 코로나 이전과는 다를 것이라는 전망 앞에서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에 휩싸이기도 하는 나날이다.

우리나라가 다른 선진국에 비해 코로나19 대해 효과적으로 대처할 있었던 것은 정부와 의료계가 신종플루, 사스, 메르스 등의 경험을 헛된 것으로 만들지 않고 그런 사태가 다시 닥칠 해야 일에 대해 착실하게 준비 덕분이 크다. 여기에 국민들의 이해와 협조가 더해져 비로소 성공적인 방역이 가능했다. 이를 통해 전세계 진단키트의 주요 공급자로서 진단 분야를 선도하고 있는 것도 기쁜 일이다.

하지만 칭찬에 취해 있을 수만은 없다. 코로나 사태를 종식시키기 위해 방역의 성공만으로는 한계가 있고 백신이나 치료제가 필요한데 이는 빨리 해결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백신 개발 사업단 출범, 바이러스 연구소 설립 등의 정부 계획이 속속 발표되고 있지만, 장밋빛 전망은 경계해야 한다.

현 상황에 대해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의 발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감염된 이후 면역 형성 과정, 면역 지속 등에 대해 밝혀진 바가 없어서 장기전으로 갈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는 치료제 개발을 위해서는 코로나19가 우리 몸에 일으키는 면역반응에 대한 기초 지식이 필수임을 적시한 것이다. 우리나라가 치료제나 백신 개발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지는 기초연구 역량에 달려 있다는 뜻이기도 한데, 관련 분야의 국내 현황을 살펴보면 전망이 그리 밝지만은 않다. 그동안 바이러스 연구는 비인기 분야여서 연구비가 계속 떨어지다 보니 연구 분야를 옮기거나, 바이러스 연구에 필수적인 음압 실험실이 없어 연구를 시작해볼 수조차 없었던 연구자들이 많았다. 메르스 사태 이후 감염병 연구에 대한 투자가 증가했지만 기초연구와 인력 양성을 담당해야 하는 대학에서의 연구 환경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특히 바이러스에 대한 생체의 면역반응 연구에서 역량이 축적된 연구자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런 상황에서 서둘러 감염병 연구소나 바이러스 연구소를 세운다고 치료제의 단서를 찾아낼 수 있는 수준의 연구 역량이 바로 생기는 것은 아니다. 치료제 개발의 핵심 요소인 생체 면역반응 연구에 필요한 인프라 구축과 꾸준한 연구를 진행할 수 있는 연구자의 저변을 넓히기 위한 장기적 투자를 해야 한다. 빠르게 큰 성과를 내고 싶은 조급함을 버리고 기본부터 차근차근 연구 역량을 축적해야 다음 위기가 닥쳤을 때 실력을 발휘해 문제 해결을 할 가능성을 기대할 수 있다. 이러한 투자가 메르스 사태 이후에 이루어졌다면 어땠을까 생각하면 안타깝다.

코로나19 통해 우리는 재난 자체를 막을 수는 없지만 어떻게 하면 피해를 최소화할 있는지에 대한 집단 체험을 하고 있다. 앞으로 새로운 바이러스가 출현할 수도 있으며, 위험이 비단 바이러스에 국한된 것이 아닐 있다는 현실 앞에서 새로운 위험을 극복할 있는 길을 과학에서 찾을 수밖에 없음을 깨닫고 있다. 자연현상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기초과학이 연구자들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데에 필수적임을 알게 것이다.

과학이 그러한 역할을 있게 하려면 정부의 연구지원 정책에 전환이 필요하다. 시장 논리에 입각한 선택과 집중의 국책사업 프레임에서 벗어나 공익성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미래의 재난 요소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분야에서 과학이 본연의 목적을 추구하며 발전할 있도록 지원함으로써 연구 저변을 튼튼히 해야 한다. 그래야, 코로나19 같은 비상사태 발생으로 특정 분야의 연구 수요가 발생했을 관련된 연구 자원을 효과적으로 집적하여 신속하고 효율적인 대응을 도모할 있다. 진단키트의 신속한 생산이 가능했던 동안의 기초연구 투자로 관련 분야에 인력과 기술 축적이 되어 있었기 때문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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