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일 ㅣ 한국외대 경영학부 교수
필자가 영국에서 박사 과정을 공부할 당시 한 40대 여성이 대학원 박사 프로그램의 행정직원이었으나, 문의할 게 있어도 늘 오후만 되면 어딘가로 사라지곤 하였다. 처음엔 불편하고 이상하게 생각했으나 나중에 알고 보니 오전 9시부터 오후 1시까지 하루 4시간을 근무하는 파트타임 정규직 직원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오전에 바로 방문하여 상담하든지, 직원의 퇴근 이후라면 그다음 날 오전 문의하는 식으로 차츰 그 직원의 근무패턴에 익숙해져 갔다. 익숙해지니 간혹 느끼던 불편함도 자연스레 사라졌던 기억이 있다.
며칠 전 문재인 대통령 3주년 기자회견이 있었고, 이를 통해 ‘전국민 고용보험’이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시대에 거세게 닥칠지도 모르는 경기침체와 이로 인한 대량 실업사태를 선제적으로 방어하기 위한 청와대의 고심이 여실히 엿보인다. 그런데도 기사마다 달린 댓글을 살펴보면 향후 납부하게 될 고용보험료를 준조세로 생각하는 듯했고, 이 때문에 고용보험 제도에 대한 긍정적인 의견과 평가를 찾아보기 매우 어려웠다. 그래서인지 정부와 여당에서도 전면적인 고용보험의 실시보다는 점진적인 단계적 확대를 우선 고려하고 있는 듯하다.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안정적으로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국민들의 동의가 필수라는 점에서 향후 정부와 여당이 어떻게 국민들을 설득하고 이해시켜 나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 제도에 대한 설득과 이해를 구하는 노력과 동시에, 앞서 언급한 파트타임 정규직원 제도를 안착시켜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있다. 오래전부터 대한민국에 거주하는 여성들은 일생에 사직을 심각하게 고려하는 시기가 두번 있다고 한다. 한번은 아이를 막 출산하여 육아를 고민하기 시작하는 때이며, 또 다른 한번은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시기라고 한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대부분의 시간을 학교에서 보낼 것이기에 언뜻 생각하면 사회생활을 지속하기에 좋을 것 같지만, 아이가 존재하고 삶을 영위해야 할 국가가 다른 사람과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견뎌야 살 수 있는 대한민국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우리 사회는 많은 여성인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그만 사장시키고 만다. 만일 우리 모두가 원하지 않는 불경기와 심각한 경기침체가 현실화된다면, 남성보다는 여성인력의 고용이 더 불안정해질 가능성이 크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라도 파트타임 정규직원 제도를 실현해볼 필요가 있다.
다만 파트타임 정규직 제도를 일자리 쪼개기 혹은 일자리 숫자 늘리기 차원에서 접근하여 유연성만 강조할 경우, 박근혜 정부에서 경험했던 나쁜 시간제 일자리의 양산으로 귀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파트타임 노동자를 전일제 정규직과 동등하게 처우하도록 법률로 규정하는 등 안정성을 확실히 담보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임시직이 아닌 정규직으로 제도화된다면 이를 통해 노동유연성과 고용안정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