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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공정’이란 무엇인가 / 김범수

등록 2020-07-13 17:49수정 2020-07-14 02:08

김범수ㅣ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정치학)

최근 인천국제공항공사에서 협력업체 소속 비정규직으로 일하던 약 1900명의 보안검색요원을 정규직으로 직고용하기로 한 결정을 두고 ‘공정’이 다시 한번 우리 사회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야당인 미래통합당과 이번 결정에 반대하는 국민들은 이번 결정이 ‘공정’한 경쟁을 거치지 않은 채 기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한 것으로 “노력하지 않은 자들의 무임승차”라고 비판하며 ‘불공정’에 해당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지난 6월23일 청와대 국민청원 사이트에 올라온 “공기업 비정규직의 정규화 그만해주십시오”라는 청원은 이번 결정이 인천국제공항공사에 취직하기 위해 “스펙을 쌓고 공부하는 취준생들”의 “자리를 뺏는” 것으로 “평등이 아니라 역차별”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인국공 청원경찰 1900명 전원의 완전경쟁채용을 청원합니다”라는 제목으로 6월30일에 올라온 국민청원은 “1100여명에 달하는 인원들이 간단한 인성검사와 면접만을 통해 인천국제공항공사의 정직원”이 되는 것은 “불공정한 특혜 채용으로 결코 정의롭지 않”다고 주장한다. 반면 청와대와 정부는 이번 결정이 “나쁜 일자리를 좋은 일자리로 만들고 사회적 불평등을 개선하기 위해 시작된”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진 결정으로 “불공정 문제와는 거리가 멀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논란을 보며 우리 사회가 ‘공정’ 개념을 이해하는 방식이 롤스의 분배적 패러다임에만 의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든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롤스는 그의 저서 <정의론>에서 다음과 같은 세가지 정의의 원칙을 제시한다. 첫째는 ‘최대한의 자유 평등 원칙’으로 정치적 자유, 결사의 자유, 사상의 자유 등 기본적 권리와 기회가 모든 시민들에게 평등하게 배분되어야 한다는 원칙이다. 둘째는 ‘차등의 원칙’으로 기본적 권리와 기회가 모든 시민들에게 평등하게 배분되어야 하지만 사회의 열악한 위치에 있는 ‘최소 수혜자들’에게 ‘최대 이익’을 보장하려는 목적을 위해 불평등하게 배분될 수 있다는 원칙이다. 셋째는 ‘기회균등의 원칙’으로 모든 사람에게 직책 및 직위에 대한 공정한 기회균등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원칙이다.

많은 청년들이 이번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인국공 사태”로 부르며 분노하는 이유는 아마도 이번 일이 롤스가 제시하는 세가지 정의의 원칙 가운데 ‘기회균등의 원칙’과 ‘차등의 원칙’을 위반하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우선 이들이 볼 때 인천국제공항공사 정규직 취직 기회가 다른 ‘취준생’들에게는 주어지지 않고 기존에 비정규직으로 일하던 보안검색요원들에게만 주어진다는 사실은 일종의 ‘특혜’로 ‘기회균등의 원칙’ 위반이다. 더 나아가 이러한 ‘특혜’가 주어질 경우에도 사회의 ‘최소 수혜자들’에게 우선적으로 주어져야 하는데 이들이 볼 때 기존에 보안검색요원으로 일하던 사람들은 비정규직이긴 하지만 이미 연봉 3800만원을 받는 직장에 취직한 사람들로 아직 직장에 취직하지 못한 ‘취준생’ ‘공시족’들과 비교할 때 ‘최소 수혜자들’로 간주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들은 만약 정규직 취직 ‘특혜’가 주어진다면 기존 비정규직이 아니라 아직 직장에 취직하지 못한 사회의 ‘최소 수혜자들’인 취준생들에게 우선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차등의 원칙’에 부합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러한 청년들의 분노에 전적으로 공감하면서도 동시에 우리 사회가 ‘공정’에 대한 분배적 패러다임을 넘어서야 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미국의 유명한 페미니스트 정치철학자인 아이리스 영은 그의 저서 <차이의 정치와 정의>에서 롤스의 분배적 정의 패러다임을 비판하며 ‘공정’ 개념을 단순히 재화와 기회를 어떻게 공정하게 나눌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억압과 착취, 차별을 초래하는 제도 개선의 문제로 접근할 것을 제안한다. 영에 의하면 분배의 공정성에 초점을 맞춘 롤스의 정의 패러다임은 사회 내에 존재하는 다양한 구조적 억압과 지배의 문제를 간과한다. 그뿐만 아니라 이러한 분배적 패러다임으로 공정의 문제에 접근할 경우 대학입시의 기회균형전형과 공무원 임용 인종별 최소인원 할당 등과 같이 기존 사회 제도의 구조적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적극적 소수자 배려 정책’(affirmative action)은 항상 ‘기회의 균등’ 관점에서의 불공정과 역차별 문제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이유로 영은 현대 사회의 ‘공정’과 ‘정의’ 개념이 단순히 분배의 공정성 문제뿐 아니라 착취, 주변화, 소수자 무력화, 문화 제국주의, 폭력 등 사회의 구조적 억압과 제도적 차별을 해소하는 데 더욱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영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번 인천국제공항공사의 보안검색요원 정규직화는 ‘기회의 균등’이라는 측면에서는 ‘불공정’일 수 있지만 차별적인 비정규직 제도의 개선이라는 측면에서는 ‘공정’하고 ‘정의’로운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번 일을 계기로 한국 사회가 ‘기회의 균등’ 차원에서의 공정성뿐만 아니라 억압과 차별적 제도의 개선이라는 측면에서의 공정성을 함께 고민해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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