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예지 ㅣ 20대 취업준비생·서울시 동작구
저는 취준생입니다. 이왕이면 정규직이 되고 싶어서 몇년을 공들여 준비 중입니다. 면접에서 수차례 떨어질 땐 세상은 왜 나에게만 가혹한가라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코로나19로 상반기 공채가 모두 취소되고 그나마 면접까지 갔던 회사에서 줄줄이 낙방한 뒤에는 저 자신에게 화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코로나19가 퍼지기 전에 갔던 무수한 면접에 붙었더라면 지금 이 고생은 안 해도 될 텐데 하고 말이죠.
스스로에 대한 분노가 사라지게 된 건 코로나19로 일자리를 잃는 사람들을 보며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후입니다. 오히려 저는 제가 특권층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먹고살 걱정을 하지 않고 정규직을 바라보며 공부할 수 있고, 먹고살기 위해 비정규직으로 입사했지만 비정규직이어서 코로나19로 가장 먼저 일자리를 잃고 또다시 생계를 위해 내몰리듯 비정규직으로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은 아니니까요. 코로나19로 제 삶이 ‘그들’보다는 덜 위협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나서야 부끄럽게도 분노가 조금이나마 가라앉았습니다.
제 분노는 가라앉았지만 최근 저와 비슷한 사람들이 분노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인천공항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때문입니다. 제 친구, 선후배 같은 사람들일 겁니다. 저처럼 사회에 대한 원망, 정규직에 대한 갈망이 모두 섞여 분노의 형태로 표출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기분을 잘 알기에 마음이 더 아팠습니다. 무엇보다 비정규직에게 가는 분노가 저를 포함한 모두를 위한 변화보다는 대립만을 만드는 결과를 낳을 것 같아서 무서웠습니다.
인천공항 정규직의 높은 연봉은 전체 직원의 80% 이상을 비정규직으로 고용해 비용을 감축하며 나온 결과입니다. 비정규직의 임금이 그만큼 낮았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도, 다른 사람들도 정규직에 목을 매고 있는 것이겠죠.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는 것은 더 이상 이들의 희생을 당연시해서는 안 된다는 선언입니다. 그리고 정규직의 자리를 늘려가면서, 정규직에만 목매며 ‘투자’라는 이름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저 같은 사람이 조금이라도 줄도록 만들겠다는 노력의 첫걸음이기도 합니다.
지금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는 그분들은 정규직이 될 시험을 준비할 여력조차 없어서, 당장의 생계가 급해서 비정규직부터 시작한 사람들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시작했다는 이유로 낮은 임금, 열악한 처우를 견딘 사람들입니다. 그 사람들의 경험을 제가 어떻게 폄훼하며 시험은 안 보고 일만 했다는 이유로 정규직이 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할 수 있을까요. 시험을 준비할 여력이 있는 사람만 정규직으로 뽑고, 시험 하나로 사람을 평가하려는 것에 더 화를 내야 하는 게 아닐까요.
코로나19가 제가 취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게 저만의 문제가 아님을 일깨워줬던 것처럼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비정규직의 상황을 개선하고, 제 친구도 선후배도 갑자기 해고될 걱정 없이 더 나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는 변화를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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