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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스웨덴 ‘집단면역’ 전략의 오해와 진실 / 장영욱

등록 2020-08-10 17:53수정 2020-08-11 02:37

장영욱 ㅣ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된 이후 ‘꿈의 복지국가’ 스웨덴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코로나 유행 초기부터 스웨덴의 대응은 심상치 않았다. 유럽의 주변국이 다 문을 걸어 잠그고 강력한 봉쇄(lockdown) 정책을 시행하는 중에도 스웨덴은 꿋꿋이 버텼다.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강력한 전염성을 지닌 이 미지의 바이러스는 북유럽의 지상낙원을 마음껏 휩쓸고 다녔다. 8월10일 현재 스웨덴의 코로나19 확진자는 8만2천여명, 사망자는 5800여명에 달한다. 인구 대비 사망자 수로 보면 스웨덴은 벨기에, 영국, 페루, 스페인, 이탈리아 다음으로 세계 6위이며 연일 언론에 오르내리는 미국, 브라질보다 더 큰 피해를 입었다.

스웨덴의 코로나19 대응은 종종 ‘집단면역 전략’으로 불린다. 인구 일정 수준 이상이 면역을 갖추는 방식으로 감염 확산을 저지하기 위해 바이러스가 빠르게 퍼지도록 방치했다는 주장이다. 봉쇄 없이 상점, 식당, 실내외 체육시설을 그대로 열어놓았고 중학교 아래로는 휴교 조처도 하지 않아서 방역당국이 집단면역을 추구한다는 오해를 받았다.

하지만 이는 스웨덴의 사정을 이해하지 않은 채 일국의 정책을 단순화 혹은 악마화하는 잘못된 시도이다. 스웨덴의 총리, 국무장관, 보건장관, 방역당국 수장까지 나서서 자신들은 집단면역을 시도한 적이 없다고 여러 차례 부인하였다. 실제로 스웨덴은 유행 초기부터 위험지역 여행을 제한하고 순차적으로 고위험군 다중시설 이용 제한, 16살 이상 교육기관 온라인 수업 전환, 50인 이상 모임 금지, 요양시설 면회 금지, 재택근무 권고 등 다양한 사회적 거리두기 조처를 시행해왔다.

스웨덴이 시종일관 느슨한 정책을 펴는 것으로 보인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스웨덴의 오랜 전통을 따라 강제성을 띠는 정책을 최소화하고 시민 개개인의 책임을 강조했다. 둘째, 제한된 가용 의료자원을 저위험군, 경증환자보다는 고위험군, 중증환자에게 우선 배분했다. 셋째, 코로나19에 자원이 집중될 때 발생하는 부작용을 고려하여 방역과 일상 사이의 균형을 추구했다. 마지막으로 코로나19 사태가 조기에 종식되기 어렵다는 과학적 근거 위에 정책의 강도와 시행 시기를 조율했다.

물론 좋은 의도가 좋지 않은 결과를 정당화하지는 못한다. 스웨덴 공중보건청장 안데르스 텡넬도 인정했듯 너무 많은 사람이 죽었다. 특히 사망자 중 90%가 70살 이상 고령자이고 전체 사망자의 절반 이상이 요양시설에서 발생했다는 점은 뼈아프다. 고위험군 보호에 집중하겠다는 정책 목표가 무색해지기 때문이다. 전염병 발생 초기에 더 강력한 통제가 있었어야 했다는 만시지탄도 스웨덴 내부에서 들린다. 2020년 상반기 경제성장률로 봤을 때 스웨덴은 주요국 중 가장 선방한 편이나, 설령 경제 분야에서 성과를 거둔다 해도 고위험군 보호 실패로 소중한 생명을 잃은 스웨덴의 대처에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다.

한국과 스웨덴의 전략은 봉쇄 없는 대응이라는 유사성이 있지만 초기 발 빠른 대처로 감염 확산 통제에 성공한 우리 모델이 더 우수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완벽한 정책은 없다. 우리가 잘한 점은 무엇이고 보완할 점은 무엇인지 늘 돌아보아야 한다. 아직 끝나지 않은 코로나19 사태를 위해서도, 앞으로 얼마나 자주 올지 모르는 신종 전염병 유행을 대비해서라도 다양한 사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스웨덴식 대응은 여타 국가와 구별점이 뚜렷한 특수 사례이므로 더 효용가치가 크다.

무엇보다 염두에 둘 것은 ‘이유 없이 국민을 죽이는 나라는 없다’는 사실이다. 다른 나라의 사례에서 교훈을 얻기 위해선 그 나라의 특수한 맥락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각 나라를 확진자, 사망자 수로 줄 세운 뒤 성과가 초라한 나라를 무시해버리면, 그리고 우리의 우월감을 확인하는 수단으로만 소비해버리면, 정작 우리가 놓치고 있는 부분을 성찰할 기회는 영영 잃어버리게 된다. 다양한 시각을 반영한 좋은 정책을 만들기 위해선 타국 정책에 대한 ‘악마화’도 ‘이상화’도 없는 정확한 이해가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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