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수 ㅣ 꽃동네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불이 났다. 어떤 집은 불길에 휩싸여 폭삭 주저앉아버렸고, 어떤 집은 곧 불길이 거세져 마찬가지로 전소될 가능성에 위태롭다. 소방차는 불을 어디부터 꺼야 할까?
최근 코로나19의 재유행 조짐이 이는 가운데 재난지원금 지급 범위를 두고 다시 논란이 일고 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이건 보편주의냐 선별주의냐의 논쟁 대상이 아니다. 기본소득 논쟁거리는 더욱더 아니다.
먼저 밝히건대 필자는 누구보다도 보편주의적 복지국가를 희구하고 평소 이론적으로도, 실천적으로 이에 대한 소신을 밝혀왔던 바다. 현대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각종 사회적 위험들이 한 개인의 대처능력으로 벗어나기엔 너무 위압적이어서 결국 그 위험에 처할 가능성이 있는 집단 모두에 예방적인 차원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 거기에는 인간의 생존권을 권리로 보는 숭고한 이념이 있고 현재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대해 개인이 아니라 국가가 책임진다는 집합주의적인 가치관이 자리잡고 있다. 그렇기에 개인들이 처한 곤경을 개인 책임으로 돌리며 경제적 능력을 스스로 키워 헤쳐나가라고 하는 선별주의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었다.
그러나 재난지원금의 논의 기반은 이제까지 고민해왔던 복지국가 구축 원리로서 어느 것을 택할 것이냐의 상황과 다르다. 이건 불이 나거나 홍수가 난 재난 상황에 대한 이야기다. 재난으로 쓸 비상물자를 같은 동네 피해 보지 않은 이들도 같이 쓰자는 경우는 없다. 코로나로 인해 당장 실직에 빠지거나 장사가 안되어 한달 한달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수많은 절망의 가구들이 늘어나는데, 보편주의의 숭고한 정신을 끌어들여 모두가 다 힘들다고, 잠정적 피해자라고 국민 모두에게 주자는 것은 눈물과 한숨에 떨고 있는 계층에 대한 배신이며 나쁜 포퓰리즘이다.
국민 모두에게 지급하자는 것에 동의할 수 있는 한가지 근거가 있다면 일정 소득기준 이하 대상자를 가려내는 일이 어렵고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것이 위의 논거들을 뒤엎진 못한다. 시간이 걸렸지만 서울시의 경우 이미 중위소득 이하자에게 지원한 행정 경험을 갖고 있다. 엄격한 기준과 절차를 조금만 완화하면 행정력과 시간은 줄일 수 있다.
재난지원금을 국민 개개인 모두에게 지급했다고 기본소득이 옳다 주장한다면 이는 기본소득에 대한 모독이다. 우리 각자가 직간접적으로 생산에 기여한 바를 토대로 사회의 총생산물 중 상당 정도를 개개인에게 나누어 모두 자유롭게 살도록 하자는 기본소득의 숭고한 정신을 코로나 위기 시에 인당 10만원씩 주는 것으로 치부하는 것은 국민에게 기본소득을 오독시키는 일이다.
좀 더 냉정해지자. 거듭되는 생산 중단과 소비 위축으로 거의 빈사상태에 이르게 된 피해 입은 계층에게 초점을 맞춘 재난지원금과 그 외의 온갖 다양한 방식을 총동원하여 민생의 붕괴를 막아내자. 한편 근본 처방으로 시급히 우리 복지국가의 취약한 구조를 뜯어고칠 담대한 발걸음을 떼자. 문재인 정부가 애초에 얘기한 포용국가의 구상과 일정을 대폭 수정하는 것이 절실하다. 복지선진국치고 재난지원금을 모든 국민에게 지급한 나라는 거의 없다는 사실이 이미 답을 말해주고 있다.
재난지원금, 이건 특수한 시기 예측하지 못한 위험에 피해 본 이들에 대한 긴박한 사회적 보상이다. 불이 났는데 온 동네 모든 집에 물을 다 뿌리는 소방관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