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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전국기능경기대회가 나는 슬프다 / 김경엽

등록 2020-09-16 14:53수정 2020-09-17 02:41

김경엽 ㅣ 전교조 직업교육위원장

9월14일 전북에서 코로나 위기 상황으로 다른 해에 비해 축소된 제55회 전국기능경기대회가 시작되었다. 무려 3년이나 되는 긴 시간을 이 무대만 바라보고 고단한 기능훈련 과정을 견디어낸 학생들이 대견스럽기도 하다. 한편에선 이를 두고 ‘기술로 꽃피우는 길’ ‘우수 숙련기능인 발굴’ ‘숙련기능인 축제’ 등 찬사를 보낸다. 이런 수사적 갈채가 직업계고등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나는 왜 불편할까?

기능대회는 노동현장에서 직업적 단련으로 얻어지는 숙련된 기술을 평가하는 무대이다. 우리나라의 기능대회는 세계 무대에서 후발 산업국가로서 위상을 높이기 위해 선수를 발굴하는 데 주요 목적이 있다. 국제기능대회 성과에 매몰된 대회 운영은 55년의 전국 대회 개최 역사와 함께하였다. 노동부의 성과주의는 세가지 면에서 국가 경제력을 한 단계 높게 도약시키는 데 한계를 낳았다.

첫째, 낮은 수준의 기능은 산업화 초기에 통용되던 국가 경제력이다. 후발 산업국가에서 전략적으로 중화학공업 발달을 이끌고자 기능인력 육성에 집중하였다. 산업고도화 시기에 접어든 기업이 과거의 전략을 채택하는 것은 기업활동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지금과 같은 방식의 기능대회는 세계라는 드넓은 무대에서 ‘기술한국’을 이끄는 데 부족함이 많다. ‘기술로 꽃피우는 길’이 아니라는 것이다.

둘째, 기능대회 출전 선수 대부분이 직업계고등학교 학생이다. 2019년 지방 대회의 경우 참가인원 5758명, 실참가자 4688명 중에서 직업계고등학교 학생이 4489명(95.7%, 2019년도 지방기능경기대회 결과보고서)이라는 비정상적 결과로 나타난다. 전국 대회는 출전 선수의 75~80%가 직업계고등학교 구성원이다. 기능반에 속한 학생들은 3년 동안 입상을 위해 대회 과제를 연습한다. 메달을 목표로 하다 보니 비현실적인 기능을 몸에 익힌다. 산업현장에서 활용되지 못하는 대회 과제이기에 산업체에서 기능대회를 외면한다. ‘우수 숙련기능인 발굴’은 허구가 된다.

셋째, 축제라고 하기에는 결과에 따른 취업 분배가 치열하다. 한동안 관심 밖에 있다가 2007년부터 몇몇 대기업에서 채용에 관심이 있다고 하나, 입시교육 외벽에서 형성한 또 다른 경쟁의 장이다. 기능대회 참여 학생들의 기능의 격차는 그리 크지 않다. 하지만 입상자와 그렇지 못한 학생 간 결과에 따른 차별은 너무 크다. 기업은 일부 직종에서 선발된 인력만 채용하고 있다. 소수만이 누리는 영광이다. 세계기능대회에 출전한 유럽 국가 선수들의 자유분방함과 경직된 우리 선수들의 모습이 너무 비교된다. 세계 대회 입상 목적으로 소수 직종에 주는 취업 혜택은 기능대회를 결코 ‘축제장’으로 만들지 못한다. 참여 동기를 제공하기 위한 미끼일 뿐이며 전체 학생의 교육의 질을 높이는 교육 정상화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더 빨리, 더 정확하게 변별력을 높이기 위해서 ‘안전’을 위한 작업 과정을 줄여야 했던 기능 훈련의 문제는 고 황준혁 학생(2007년 2월 사고사)이 드러내주었다. 기능 중심의 반교육적 학교 운영 문제는 이준서 학생(2020년 4월 극단적 선택)의 사망 원인 조사 결과로 확인되었다. 두 학생이 희생된 주요 원인이 성과 중심주의에 매몰된 기능대회 준비 과정에 있었다. 직업계고등학교 진학과 기능반이 학생의 선택이라고 하지만 정말 자유로운 선택이었는가? 직업계고등학교 교육과정을 정상적으로 받으면 누구에게나 진로가 보장되는 정책이 먼저다. 그런 정책이 공고한 상태에서 개인의 적성과 희망이라는 선택지를 넓혀야 한다. 제한된 선택지, 구세대가 만든 가치 속에 학생들을 밀어 넣고 있다. 그래서 기능대회 개최 소식을 접한 나는 교사로서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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