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욱 ㅣ 고려의대 예방의학 교수·대한의사협회 국민건강보호위원회 과학검증위원장
우리나라 병원의 치료병상 수는 2017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 기준 인구 1천명당 12.3개로 오이시디 평균(4.7개)의 약 2.6배에 이르고, 세계에서 두번째로 많다. 그런데도 코로나19 치료병상이 부족한 상황은 무슨 연유인가? 일차적 책임은 병상 확보에 대한 사전 준비와 대응을 철저히 하지 못한 정부에 있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일선 의료 현장의 상황 분석과 과학적 대책 마련을 시작해야 한다. 그러나 계산기 두드려 제품 생산하는 것처럼 병상 확보가 가능하지 않다. 실제 병원 내 환기시스템을 통한 공기 중 코로나바이러스 차단이 기술적으로 어려운 것이 병원의 현실이다. 더구나 음압격리 병상은 이미 포화 상태다. 응급실, 중환자실과 병동의 병상 일부를 코로나 환자 병상으로 무 자르듯 할당하는 것이 의학적으로 불가능한 이유다.
그럼에도 병상 확보가 어려운 원인이 민간병원의 비협조와 정부의 무능력 때문이라는 일부 전문가의 의견은 출발부터 잘못됐다. 지금도 코로나 환자와 응급환자 치료에 지쳐가는 일선 병원과 의료 현실을 모르는 탁상논란들, 그리고 이를 부추기는 일부 언론의 선정적 보도는 또 다른 형태의 가짜뉴스와 무엇이 다른가? 더구나 코로나19 대유행의 위기 상황을 어렵게 헤쳐 나가고 있는 정부 당국자와 민간의료기관을 폄훼하고 공격하는 것은 8월 당시 겪었던 공공과 민간의료의 이분법적 사고와 편 가르기 같은 정치적 프레임을 다시 보는 것 같다.
의료 현장의 시각에서 병상 확보에 관한 대책을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코로나19 전담병원’과 같이 특정 병원 전체를 코로나 치료 전문병원으로 지정해야 한다. 코로나 환자 사망률 감소는 상급종합병원의 중환자 치료에 달려 있다. 상급종합병원의 전문중환자실은 에크모(ECMO) 치료 등 가장 위중한 환자들을 치료하고, ‘코로나19 전담병원’은 폐렴 치료 등의 일반 중환자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을, 생활치료센터는 경증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곳으로 구분해 치료체계를 개편하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 ‘코로나19 병상 및 의료인력 확보와 의료기관 지원 종합대책’을 수립해야만 한다. 긴급 병상 확보 대책을 넘어 내년 1월까지 최악, 최선의 시나리오별로 병상 확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는 코로나19 치료뿐만 아니라 중증 일반질환 치료와 필수응급의료체계의 붕괴를 예방하기 위함이며, 그래서 종합대책은 필요하다. 코로나19 치료에만 매몰돼서는 안 된다.
셋째, ‘코로나19 민관합동 긴급의료위원회’를 설치하고 병상 확보 종합대책 마련과 실행을 주도해야 한다. 특히 코로나 전담치료 병원의 보상체계를 기존 보건복지부 피해보상심의위원회 주관의 사후정산 방식에서 탈피해 사전합의에 의한 일괄적 사전보상책으로 전환해야 한다. 실제 올해 2월 대구 동산의료원이 코로나 전담병원으로 참여해 매우 큰 기여를 했음에도 열달이 지난 지금도 정부의 피해보상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병원이 선뜻 코로나 전담치료에 참여할 수 있을까? 국가 위기 상황에서는 정부 당국자가 소신 있게 일할 수 있는 행정 기준 마련과 전권 부여, 그리고 사전보상체계가 준비돼야만 효과적인 민관 의료공조가 구축될 수 있다.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하려면 의료 현장에 대한 냉철한 문제인식과 의과학적 근거하에 대응해야 한다. 공공과 민간의료라는 이분법적 정치경제학적 프레임과 비난, 낙인찍기와 같은 정치적 슬로건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지금도 일선 의료 현장에서 환자 곁을 지키고 있는 의료인들과 정부 당국 그리고 국민의 신뢰와 연대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