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해 ㅣ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대학은 사시사철 말과 글이 피어나는 꽃시장이다. 그런데 피지 못한 꽃들이 있다. 외국인 유학생.
그들은 강의실의 섬이다. 그림자처럼 뒷자리에 웅크려 앉아 있다. 말을 건네면 웃고 만다. 뭔가를 참아내고 있는 듯하다. 숙제의 첫 문장은 존댓말인데 두 번째 문장부터는 반말이다. 그러다 갑자기 전문가의 글솜씨로 탈바꿈. 자동번역기를 쓰거나 참고자료를 짜깁기한 것이다. 선생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대학원생도 적지 않다. 한국 학생에게 유학생의 의견도 들으면서 생각의 지평을 넓히라고 권하지만, 실패한다. 기죽어 있는 학생에게 ‘괜찮다, 천천히 말하라. 한국어가 서툴 뿐 할 말이 없진 않다’는 격려는 무력하기만 하다.
귀찮거나 피하고 싶다가, 성적 처리 기간만 되면 고마운 존재로 바뀐다. 성적의 바닥을 깔아 준다. 대학교육을 망쳐온 상대평가제의 최대 희생양은 유학생들이다. 유학생에게 ‘B’는 꿈같은 학점이다. 한국 학생이라면 ‘성적산출근거’를 묻는 메일을 선생에게 보낼 텐데.
외국인 유학생은 수년에 걸친 등록금 동결로 쪼들린 대학의 가장 손쉬운 수입원이다. 유학생 유치 전쟁은 한국어 실력에 대한 기준을 더욱 낮추었다. 문턱을 낮춰 일단 가게 안으로 들인 다음, 말이 통하지 않는 ‘호갱’을 이리저리 뜯어내곤 나 몰라라!
대학에서 벌어지는 이 제도화되고 관습화된 차별과 무책임의 기원이 한낱 언어 문제라는 게 부끄럽고 한심하다. 자유이용권을 팔고서는 ‘키가 작으니 놀이기구는 못 탄다. 키 작은 건 너의 책임’이라니. 말 때문에 이등 학생을 만드는 건 염치없다. 뽑았으면 책임도 져라. 말을 가르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