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글살이]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지난달 서울 사는 준하는 할머니께 전보를 치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번 생신 때 찾아뵙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대신 이렇게 전보로 마음을 남깁니다. 할머니께 편지를 쓰는 건 처음인 것 같습니다. 할머니께 업혀 놀던 기억이 아직까지 새록새록 합니다. 저는 할머니의 인생 중 2할도 못 채울 만큼 어리지만 지금까지 얼마나 힘드셨을까요? (중략) 생신 축하드립니다. 너무 늦게 연락드려 죄송해요.”
어떤 수단으로 소식을 전하느냐에 따라 받는 사람이 느끼는 감동은 하늘과 땅 차이. 전보를 받은 박남주 할머니는 좋아서 펑펑 우셨다고 하더라.
결혼식 사회자가 축전(축하전보)을 소개하거나 영결식장에서 조전(조문전보)을 읽어주기도 하지만, 이제 전보를 칠 일은 거의 없다. 지금은 기다림을 상실한 시대. 생각나자마자 문자를 보낼 수 있는데 굳이 하루 이틀은 걸리는 전보를 칠 이유가 없지. 문자메시지는 자동 반응 기계. 바로 읽고 바로 답해야 한다. ‘읽씹’(읽고 답하지 않기)을 당하면 삐지기 일쑤.
전화가 보급되기 전에 급한 소식을 전하는 수단은 전보였다. 글자 수에 따라 값을 매기기 때문에 돈을 아끼려고 길이를 최대한 줄였다. ‘조부위독급래’(할아버지께서 위독하시니 빨리 오라) 식의 전보식 문장이 흔히 쓰였다. 138년 동안 유지되던 전보 서비스가 지난 12월15일 종료되었다. 그사이에 흥이 넘치는 젊은이들이 전보 치기 놀이를 즐겼다고 한다. 못내 아쉬운 사람들을 위해서인지는 모르지만, 2월 말까지 서비스를 연장한다고 하니 놀이 삼아 전보를 쳐 보시라. 글자 수도 늘어 전화로 신청하면 50자, 인터넷으로는 150자까지 가능하다. 내 마음이 상대방에게 가닿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걸 경험하는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