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한-일월드컵을 분기점으로 우리나라 국호를 ‘한국’ 대신 ‘대한민국’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늘었다. 박정희·전두환·노태우 군사정권 치하에서는 스스로를 ‘대한민국’이라고 부르기 남사스러웠다. 먹고살 만해지고 민주화도 진척되니 비로소 더는 꿀릴 게 없다는 자부심으로 ‘대한민국’이라 부를 힘이 생겼다.
문제는 우리는 여전히 분단국이라는 것. 전쟁을 치른 원수지간이지만, 우리는 서로를 ‘남’과 ‘북’이라 불렀다. ‘남녘’ ‘북녘’이라고도 했다. 국가명을 쓰지 않고 그저 각자가 서 있는 방위만을 표시해 두었다. 확고한 명명을 유보한 채로, 서로를 빈칸으로 남겨둔 채로. 그 의지는 남에서는 ‘남한, 북한’으로, 북에서는 ‘북조선, 남조선’으로 서로를 부르게 했다. 언젠가 하나의 한국, 하나의 조선을 이루겠다는 바람이었겠지.
꼭두각시라는 뜻의 ‘괴뢰’라 부르며 으르렁거리던 남북은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에서 처음으로 서로를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 불렀다. 그래도 이 문서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주어는 ‘남과 북은’이다. 6·15 남북공동선언, 10·4 남북정상선언, 4·27 판문점선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삽시간에 남북이 남남이 되어간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우리를 ‘대한민국’이라 불렀다. 낯설다. 화났을 때 상대방 성명을 앙칼지게 외치듯, ‘대한민국은 철두철미 제1의 적대국’이라 했다.
북녘 사람들이 남녘을 ‘대한민국’이라 부르는 게 어색하다. 남녘 사람들이 북녘을 ‘조선’이라 부르면 더 어색할 듯하다. 눈에 힘을 주고 이를 앙다문 채 적개심을 불태우는 상황이지만, 나는 여전히 ‘남과 북’이란 말이, ‘남녘, 북녘’이란 말이 좋다. 평화를 부르는 이름을 버리지 말라.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