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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말글살이] ‘공정’의 언어학

등록 2021-06-27 17:47수정 2021-06-28 02:39

공평하고 올바름. ‘불공정하다’는 말만 꺼내도 긴장하게 되는 도덕적 당위. ‘선발’에만 선택적으로 사용해서 문제. 격차, 기회, 교육, 행복과 같이 시간이 오래 걸리는 주제에는 잘 안 쓴다.

경비를 전액 지원하는 해외연수생을 모집한다면 당신은 어떤 기준으로 뽑겠는가? 토익토플 점수? 학교 성적? 자기소개서? 가정 형편? 나의 은사님은 두 가지 기준으로 뽑았다. 첫째, 영어를 못할 것. 둘째, 외국 여행 경험이 없을 것. 영어를 잘하던 학생들 모두 낙방. 외국에 한 번도 못 가 본 학생이야말로 외국을 경험해야 하는 사람이라는 기준. 불공정해 보이는가? 누구에겐 불공정, 누구에겐 공정.

말의 의미는 우연한 탈주를 꿈꾼다. 낱말 ‘먹다’를 아무리 째려본들 ‘마음먹다, 나이 먹다, 욕먹다’라는 표현이 가능한 이유를 못 찾는다. 식물 ‘꽃’만 고집하다가는 ‘눈꽃, 불꽃, 소금꽃, 열꽃, 웃음꽃, 이야기꽃’이 만들어내는 꽃다움의 확장을 어찌 만나리. 두 낱말의 우연한 조응과 부딪침만이 변화의 동력이다. 의미 탈주의 가능성은 개체가 갖고 있는 본질에서 나오지 않는다. 행여 본질이 있다면 그 본질을 부수고 타넘는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쓰는 ‘공정’이라는 말은 지극히 뻣뻣하고 날이 서 있다. 말 공부하는 입장에서 공정은 ‘움직이고 전진하는’ 공정이다. 공정의 불가능성 앞에 겸손해지고 끝없는 파격으로 공정의 가능성을 실험해야 한다. 뽑힌 사람만이 아니라, 떨어진 사람을 위한 공정, 떨어질 기회조차 없는 사람을 위한 공정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공정함이 연민과 함께 가는 말이 되었으면 좋겠다.

김진해ㅣ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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