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철우의 과학풍경] 오철우ㅣ서울과학기술대 강사(과학기술학)
‘꿈속으로 광고가 들어오고 있다: 뭐라고?’ 잠과 꿈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이런 제목의 성명서를 온라인에 공개했다. 성명은 우리 꿈이 광고와 마케팅의 공간으로 이용되는 날이 올 수 있다고 경고하며 이에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 하버드 의대와 매사추세츠공대(MIT) 등의 이름난 꿈 연구자 38명이 성명에 참여했다.
내 꿈이 광고와 마케팅의 공간이 되는 게 정말 가능하고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질까? 현장 연구자들의 우려이니, 공상과학 같은 얘기로 흘려들을 수는 없겠다. 물론 이런 일이 당장 일어나는 건 아니지만, 언젠가 현실이 될 수 있다고 이들은 진지하게 경고한다. 꿈을 다루는 공학 기술이 뇌과학과 더불어 빠르게 발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이 분야에서는 잠자는 동안 꿈에 끼어들어 꿈의 내용을 유도할 수 있다는 이른바 ‘목표설정 드림 인큐베이션’(TDI) 기술이 주목을 받아왔다. 지난해엔 매사추세츠공대 연구진이 최면 상태 같은 수면 초기의 특정 시점에 맞춰 냄새, 소리, 빛, 이야기 같은 외부자극을 주면 꿈의 주제를 유도할 수 있음을 간편한 웨어러블 장치를 통해 보여주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꿈 공학은 좋은 용도로 쓰일 수 있다. 연구자들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나 우울증을 완화하거나 특정 조건에서 학습과 창의성을 돕는 데 이런 기술이 쓰일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그런데 성명서와 <사이언스> 보도에 따르면, 최근 몇몇 대기업이 꿈 공학에 큰 관심을 보이고 또한 마케팅에 활용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맥주회사는 소비자들에게 잠자기 전에 기업 홍보 영상을 보고서 그 꿈을 경험해보라고 권하는 이벤트 행사를 벌이고, 일부 게임회사는 드림 인큐베이션의 개념을 마케팅에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업적인 관심이 꿈 공학을 광고와 홍보에 직접 활용하는 데로 나아갈지도 모른다는 게 이번 성명에 담긴 우려다. 연구자들은 “우리 꿈은 기업 광고의 놀이터가 될 수 없다” “의식과 무의식의 마지막 피난처 중 하나인 우리 꿈이 조작되지 않도록 보호 정책이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성명에 참여하지 않은 연구자 중에는 이런 우려가 지나친 기우일 뿐이라고 평하는 이들도 있다. 최근 벌어진 광고와 마케팅은 이벤트 행사일 뿐이고 실제로 꿈을 조작하는 효과를 보여주는 건 아니며 깨어 있을 때의 광고 효과를 생각하면 꿈속 광고의 실질적 의미는 그리 없다는 것이다.
그렇더라도 성명서가 전해주는 경각심은 여전히 의미가 있을 듯하다. 꿈 공학 기술의 유행을 타고서 아직 검증되지 않은 꿈 공학 마케팅 이벤트나 상품 서비스가 무분별하게 등장해 혼란을 일으키는 일이 앞으로도 벌어질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