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철우ㅣ한밭대 강사(과학기술학)
2017년 11월 포항에서 일어난 규모 5.4의 지진은 국내 관측 시작(1978) 이래 두번째 큰 지진으로 기록됐다. 그해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일주일 연기될 정도로 우리에게 큰 피해와 충격을 안겼다. 2019년 3월 정부조사연구단이 밝힌 지진 원인은 또 다른 기록을 남겼다. 조사단은 진앙지 부근에서 땅속 4~5㎞까지 관정을 뚫어 수행하던 지열발전 실증연구 활동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지열정 굴착과 물 주입에 의한 영향이 단층에 누적돼 촉발된 지진활동”으로 추정됐다. 흔히 지진은 거대 지각판이나 활성단층의 운동으로 설명됐는데, 땅을 뚫는 인간 활동이 지진까지 일으켰다니. 당시엔 생소한 설명처럼 들렸다.
하지만 땅속 깊숙이 영향을 끼치는 산업 활동이 늘면서 인간 활동이 일으키는 유발(촉발) 지진도 지진학자들의 관심사가 되었다. 전통적인 광산이나 석유, 가스 채굴뿐 아니라 아주 깊숙한 지하에 폐수나 가스를 저장하거나 지열에너지를 끌어내는 기술 활동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유발 지진의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위험 확률을 예측하는 모델을 개발하는 연구 결과도 종종 발표된다. 얼마 전엔 독일 베를린자유대학 등 국제 공동연구진이 유발 지진 연구가 본격화한 2015년 이후 연구를 종합하고 유발 지진의 예측 모델 가능성을 살피는 논문을 ‘네이처 리뷰 지구와 환경’에 발표했다.
논문에서는 유발 지진을 일으키는 다양한 잠재적 원인이 다뤄졌다. 깊은 지하에서 셰일 가스를 채굴할 때 사용하는 수압파쇄 공법은 대표적인 잠재적 원인으로 지목된다. 대규모 광산, 댐, 저수지도 주시해야 하는 잠재적인 원인이다. 물을 집어넣고 빼내는 지열발전 시설도 주의해야 한다. 포항 지진은 지열발전 수행 중에 일어난 가장 큰 지진으로 기록됐다. 요즘 주목받는 탄소 포집저장 기술에서도 지진 위험을 살펴야 한다.
물론 모든 지하시설이 위험한 건 아니다. 유발 지진은 우리 생활권이 된 수십, 수백 미터 지하가 아니라 몇 킬로미터 아래 땅속에서 일어나는 문제이다. 또한 유체 주입이나 추출이 지층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는 조건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물이나 다른 액체를 땅속 깊숙이 주입하거나 추출할 때 균열과 단층면에 작용하는 응력에 변화가 생기면 단층이 불안정해질 수 있다.
유발 지진 사례 데이터베이스인 ‘하이퀘이크’(inducedearthquakes.org)를 보면, 지금까지 알려진 유발 지진은 1302건에 이른다. 가장 많은 사례는 수압파쇄(32%)였고, 이어 광산과 대형 저수지, 석유와 가스 채굴의 경우가 많았다. 지열발전 사례는 6%를 차지했다.
유발 지진은 인류세의 단면을 보여주는 듯하다. 과학기술학자 브뤼노 라투르는 ‘지구와 충돌하지 않고 착륙하는 방법’이라는 책에서 무대와 배우의 은유를 이야기한 바 있다. 대지는 인간 중심 드라마의 무대 배경처럼 인식되지만, 인간 활동이 커진 인류세의 시대에 대지의 비인간 존재는 이제 대본까지 바꿀 수 있는 무대 행위자로 등장했다는 것이다. 이런 은유는 땅이 그저 우리 인간 활동의 배경이 아니라 반응하는 존재이며 무대의 동반자임을 비춰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