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해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달포 전에 후배가 찾아왔다. 별다른 교류가 없었는데 대뜸 보자고 한다. 약속을 하고 나니 궁금해져서 문자로 물어보았다. ‘근데, 왜 보자는 거죠?’, ‘청탁할 일이 있어서…’ 홍보 쪽 일을 하고 있으니 ‘드디어’ 나를 모델로 쓰려고 하나? 상상이 맹랑하다.
그가 꺼낸 이름은 ‘이석기’. “이 코너는 말이나 글에 대해서 쓰는 건데 그런 정치적인 주제를 다룰 수 있을까?” 하며 발을 빼려고 했다. 하지만 그의 한마디는 나를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했다. “그도 말 때문에 갇혔잖아요. 오직 말 때문에.”
맞다. 돈이나 칼이 아닌, 오직 말 때문에 갇혀 있다. 8년째다. 어느 강연회에서 한 발언 녹취록을 유일한 증거로 삼아 국회의원인 그를 내란선동죄로 감옥에 잡아넣었다. 지금도 한국 사회에서 ‘자주, 민주, 통일’이란 말은 안전하지 않다. 왜? ‘국가 안보’를 위협하고 북한을 이롭게 하니까. 이런 입방아에 오르지 않으려고 입을 닫아버린다. 하지만 전쟁이나 천재지변 등 ‘비상사태’를 포함해서 어떤 경우에도 사상, 양심, 종교, 표현의 자유는 제한할 수 없다. ‘국가 안보’라는 이유로 입을 틀어막아서는 안 된다. 누구든 ‘국가’를 향해 어떠한 비판과 모욕적인 언사도 날릴 수 있어야 한다. 우리도 가입해 있는 국제 인권규약의 명령이다.
학살자 전두환도 김대중을 내란음모죄로 몰아 감옥에 가두었다가 2년6개월 만에 석방했다. 이석기의 출소일은 2023년 5월3일. 다 채운다면, 박근혜, 문재인, 그리고 다음 정부까지 3대에 걸친 수감이다. 가혹하다. 광복절엔 석방하라. 말을 풀어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