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장 보궐선거날인 지난 4월7일 오전 서울 양천구 양천중학교 야구연습장에 마련된 투표소의 투표 장면.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안영춘|논설위원
대통령 선거 얘기를 하지 않는 게 하는 것보다 어려운 시절이 돌아왔다. 자신이 찍은 후보가 당선되는 걸 본 적이 없는 이라면 성가시거나 소외된 시간으로 들어서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냉소해서는 안 된다. 누군가에게는 삶과 죽음의 갈림길이 육박해오는 시간일 수 있다. 후보와 그 진영을 이르는 말이 아니다. 내가 알기로 선거에 졌다고 극단적 선택을 하는 후보는 여태 한 명도 없었다. 다들 국민의 현명한 선택 앞에 고개 숙이고, 서둘러 앞날을 다짐했을 뿐이다.
2012년 12월19일, 대선 결과가 나오기 무섭게 노동자 세 명이 목숨을 끊었다. 모두 장기 투쟁 사업장 소속이었다. 스스로 세상을 등진 게 아니라 천 길 벼랑 끝이 발밑에서 무너진 ‘추락사’였다. 애초 그들 앞에 놓인 ‘죽느냐 죽지 않느냐’의 양극적 경로는 선택지라고 할 수 없었다. 선거 결과가 달랐으면 죽지 않았겠으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을 것이다. ‘사람이 먼저인 나라’에 희열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촛불정부’ 4년 남짓, 선거 국면은 어느덧 9년 전의 짙은 안갯속으로 회귀했다.
어느 누군가에게는 삶과 죽음의 갈림길이 육박해오고 있을 지금, 이 사태의 책임을 그들에게 묻는 건 어불성설이다. 그들의 불길한 앞날은 그들 앞에 선택지가 주어지지 않은 데서 비롯된다. 심지어 어느 누구도 이 사태에 전적인 책임은 없다. 4년 내내 문재인 정부를 흔든 보수야당·언론과 대통령 곁에서 ‘내로남불’을 시전하던 이들은 적대적 공생관계였다.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과 감사원장이 야권 유력 후보인 건 오는 선거의 안과 밖이 뫼비우스 띠와 닮았음을 보여주는 징후다.
억압 상태로 끝없이 되돌아가고자 하는 충동을 ‘반복강박’이라고 한다. 철학자 테오도어 아도르노는 사회에도 반복강박이 있다고 봤다. 겉보기에 사회가 진보하는 것 같지만, 사회 환경과 벌이는 싸움 속에 이미 그 환경의 요청대로 자기를 적응시키려는 강박이 있다는 거다. 아도르노는 그런 절대적 환경을 ‘객관적 권력’이라고 불렀다. 객관적 권력의 이데올로기가 내면화된 상태에서 나의 저항은 적의 의도와 분리되지 않는다. 싸우면 싸울수록 객관적 권력의 가치만 공고해진다.
이런 원리를 오늘날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이슈가 ‘부동산’이다. ‘집값 안정’은 텅 빈 기표다. 자가 소유 여부와 거주 지역뿐 아니라 세대 간에도 실존적 위치에 따라 소통 불가능한 기호가 된 지 오래다. 집값을 급격하게 내리라는 건지, 시나브로 내리라는 건지, 현상 유지를 하라는 건지, 물가인상률과 연동해 오르게 하라는 건지, 심지어 집값 뛰는 건 놔두고 종합부동산세와 공시가격을 내리라는 건지 종잡을 수 없다. 부동산 정책은 어느덧 만인이 두들기는 ‘동네북’이 됐다.
저항의 포즈로 객관적 권력을 강화하는 대표적 집단이 바로 중간계급(중산층)이다. 정부가 지난봄 서울 공공개발 정책을 발표했을 때, 동자동 쪽방촌에 집을 가진 교사와 대화할 일이 있었다. 평생 민중을 위해 살았노라 자처한 그는 공공개발에 대해 “내 재산을 ‘수탈’해 밤낮 술만 마시는 쪽방 세입자에게 퍼주는 짓”이라며 울분을 토했다. 객관적 권력은 부동산의 경로를 타고 한 사람의 생애서사를 교란하고 있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말한 ‘국민 약탈’의 생생한 실증 사례였다.
중간계급의 자기기만적인 반복강박에 포획된 문재인 정부는 소멸해가던 보수야당을 화려하게 부활시켰다. 이대로 가면 내년 대선은 보수야당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선거가 될 것이다. 정부와 여당이 중간계급의 욕망을 쫓아 종합부동산세도 내리고 공시가격도 내릴 때마다 상대의 선거를 돕는 회로가 이미 구성돼 있기 때문이다. 상대는 이쪽의 수를 읽고 학습하는 고성능 인공지능(AI) 자동기계다. 패배하는 것보다 두려운 건 이기고 있는 도중에도 상대가 계속 강해지는 것이다.
“이 적이 없으면 또 다른 적― 내일/ (…)/ 오늘의 적도 내일의 적처럼 생각하면 되고// 오늘의 적으로 내일의 적을 쫓으면 되고/ 내일의 적으로 오늘의 적을 쫓을 수도 있다/ 이래서 우리들은 태평으로 지낸다”(김수영, ‘적 1’)
대선 얘기를 하지 않는 게 하는 것보다 어려운 시절이다. 심각한 대화의 속내는 태평하다. 누가 이겨도 객관적 권력이 이기는 거니까. 몇 사람만 추락사하면 그만이니까.
jon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