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해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뜬구름 잡는 얘기 그만해라.” 자주 듣는 말이다. ‘말은 본질이 없고 시시때때로 변하며 다른 말과의 우연한 조응과 부딪침만이 변화의 동력’이라고 했으니 그럴 수밖에.
의미가 고정되어 있다는 생각은 오해다. 낱말마다 번호를 매겨 뜻풀이를 해 놓은 사전의 영향이 크다. 사전은 우리 머릿속도 낱말과 의미가 순서대로 쌓여 있다고 착각하게 만든다. 하지만 의미는 말들 사이, 그리고 말과 세상 사이에서 벌어지는 의존적인 상호 발생 현상이다.
‘큰일’의 뜻이 뭔가? 어떤 뜻 하나가 떠올랐다면, 실은 이 낱말만의 뜻이 아니다. 다른 낱말과의 연루! ‘중요한 일’이라고 한다면, ‘큰일을 하다, 큰일을 맡다’ 같은 표현에서 실마리를 잡은 것이다. ‘큰 사고나 안 좋은 일’이란 뜻이라면, ‘큰일이 나다, 큰일을 저지르다’에서 갖고 온 것이다. ‘결혼이나 장례 같은 행사’라면, ‘큰일을 치르다’에서 온 것일 테고.
그렇다면 ‘큰일’의 의미는 어디에서 왔는가. 뒤에 붙는 ‘하다, 나다’ 따위의 말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하다’는 ‘중요한 일’, ‘나다’는 ‘안 좋은 일’이랑 결합해야만 할 이유도 없다. 도둑질한 사람에게 ‘큰일을 했다’거나, 더운 날 시원한 소나기를 보고 ‘큰일이 났다’고 하지 못할 법은 없다. 그러니 ‘큰일을 하다, 큰일이 나다’에 쓰인 긍정·부정의 의미는 이 표현 속에 들어 있는 것도 아니다.
더구나 어떤 일이 ‘큰일’인지에 대한 판단에는 사회적 습속이나 통념, 개인의 경험과 가치체계가 작동한다. ‘대통령’은 큰일인가? ‘청소 노동’은 작은 일인가? 말은 말을 초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