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철우|서울과학기술대 강사(과학기술학)
현미경은 17세기 이후 과학의 영역을 보이지 않던 작은 것들의 세계로 넓혀주었다. 특히 세포와 미생물 연구는 현미경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세포(cell)라는 말도 1665년 영국의 로버트 훅이 현미경으로 코르크에서 식물 세포 구조를 처음 본 뒤에 생겨났다. 가시광선을 이용하는 광학현미경은 얼마나 작은 세계까지 볼 수 있을까? 현재 광학현미경의 최고 해상도는 2004년 기네스 세계기록에 오른 2㎚(나노미터, 10억분의 1m 단위)의 분해능이다. 광학현미경의 극한에 도달한 듯한 이 기록은 17년째 깨지지 않고 있다.
더 작은 미시 세계의 문은 전자현미경이 열었다. 전자빔을 대상물에 쏘고서 관통하거나 부딪혀 나오는 갖가지 전자 신호 데이터를 컴퓨터로 분석해 영상을 얻는 방식이다. 1930년대 초 등장한 전자현미경은 해상도의 혁신을 거듭해 이제는 원자와 분자를 다루는 실험실의 필수 장비가 됐다. 1980년대 물질 표면을 원자 수준으로 볼 수 있게 되면서 초정밀의 신소재나 반도체, 전자공학 같은 분야의 나노기술 연구에서 견인차 구실을 해왔다.
그런 전자현미경 해상도의 한계는 어디쯤일까? 현재 기네스 세계기록에는 2018년 미국 코넬대의 데이비드 멀러 교수(물리학) 연구진이 세운 기록이 등재돼 있다. 이들의 전자현미경은 무려 0.039㎚의 해상도를 구현한다. 원자 크기 수준의 단위인 1옹스트롬이 0.1㎚임을 생각하면, 0.039㎚ 기록은 현미경 해상도의 극한처럼 여겨질 만하다.
프라세오디뮴(Pr)-스칸듐(Sc)-산소(O) 결정의 원자 영상. 출처: 미국 코넬대
그런데 이 기록이 깨졌다. 2018년 기록의 보유자인 같은 연구진이 자기 기록을 경신한 것이다. 이들은 배율을 2배가량 높여 0.02㎚ 해상도를 갖춘 전자현미경을 최근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더 많은 양의 전자 신호를 수신하고 더 정교하게 패턴을 분석하는 하드웨어와 알고리즘을 개발해 더 뚜렷해진 원자들의 모습을 포착해냈다. 이들이 공개한 프라세오디뮴(Pr)-스칸듐(Sc)-산소(O) 결정의 원자 영상을 보면, 원자들은 낱개로 뚜렷이 식별되고 원자 간 거리도 더욱 확연해졌으며 원자 배열 구조도 훨씬 명확해졌다.
연구진은 원자 낱개를 이보다 더 선명하게 볼 수는 없다고 말한다. 영상에서 낱개 원자는 여전히 아주 먼 우주 공간의 별처럼 흐릿하게 빛나는 모습으로만 나타난다. 해상도 기술의 한계 이전에 원자의 고유한 진동 때문에 원자는 뿌옇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연구진은 “더 이상 신기록은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장담할 수 있을까? 누군가의 도전은 계속될 것이고, 그래서 언젠가 지금 알지 못하는 방식으로 기록 경신이 이뤄진다면 그때는 더욱 극적인 성취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