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 용어인 ‘카르텔’의 사전적 의미는 “동일 업종의 기업이 경쟁의 제한 또는 완화를 목적으로 가격, 생산량, 판로 따위에 대하여 협정을 맺는 것으로 형성하는 독점 형태. 또는 그 협정”을 말한다. 이게 확장돼서 ‘사회적 이익을 독점하거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부정하게 결탁, 협력하는 시스템’의 뜻으로도 많이 쓴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지난달 29일 대선 출마 선언을 하면서, 현 정권에서 “소수의 이권 카르텔이 책임의식과 윤리의식이 마비된 먹이사슬을 구축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이권 카르텔’이 뭔지, 어떤 방식의 먹이사슬을 구축하고 있는지 등은 적시하거나 설명하지 않았다.
과문한 탓인지, 윤 전 총장이 서울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으로 재임한 기간 카르텔이라고 할 정도의 대형 부패 사건이 있었는지 딱 떠오르지 않는다. 유재수 전 부산 경제부시장이 부패 혐의로 기소된 사건이 있었지만, 카르텔이라고 하기엔 개인적 일탈 범죄의 성격이 강하다.
카르텔에 걸맞은 사례는 오히려 윤 전 총장의 출마 선언 직후에 몇가지 불거졌다.
첫째, 윤 전 총장 장모 최아무개(74)씨 사기 사건이다. 지난 2일 의정부지방법원은 장모 최씨의 의료법·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혐의에 대해 징역 3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최씨는 동업자들과 ‘사무장 병원’을 설립해 22억9000만원의 건강보험 요양급여를 편취한 혐의로 기소됐다. 사위, 곧 윤 전 총장의 손윗동서는 병원 행정원장으로 참여했다. 2015년 경찰 수사에선 희한하게도 장모 최씨만 ‘책임면제 각서’란 걸 들이대며 무혐의 처분을 받았는데, 이걸 써준 동업자 중 한명은 위조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원래 이런 각서는 법적 효력이 전혀 없는데도, 경찰 수사를 지휘했던 검찰은 경찰 수사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이권 카르텔’이란 게 있다면 아마도 이런 모양이 아니겠나 싶다.
둘째, ‘가짜 수산업자’와 얽힌 검·언·정 뇌물 의혹 사건이다. 포항의 가짜 수산업자 김아무개씨에게서 윤 전 총장의 대변인을 지낸 이동훈 전 <조선일보> 논설위원과 윤 전 총장이 수사팀장으로 참여했던 국정농단 특검에서 함께 근무했던 부장검사, 심지어는 특검 자신까지 골프채, 현금, 슈퍼카 렌트 등을 제공받았다는 혐의를 받는 사건이다. 서로 서로 소개시켜주고 금품이 오간 ‘이권 카르텔’의 전형이다.
셋째, 대선 주자로서 윤 전 총장에 대한 검증 사안의 하나로 ‘윤우진 전 용산세무서장 뇌물 의혹’ 사건이 새롭게 떠올랐다. 윤 서장이 육류수입업자가 선결제해 둔 골프장에 검사·기자·세무공무원 등과 가서 공짜로 골프를 하는 등 거액의 뇌물을 받았는데, 경찰이 수사에 나서자 검찰이 압수수색영장을 6번이나 기각하는 등 봐준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해외로 도피했던 윤 서장이 인터폴에 의해 체포돼 국내 송환됐는데도, 검찰은 경찰이 신청한 구속영장을 기각한 것은 물론 2년여 사건을 끌다가 무혐의 처분했다. 돈은 받았는데 대가성이 없다는 이유였다.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라는 ‘기적의 논리’였다. 윤 전 총장도 골프를 같이 하고, 수사 무마에 힘을 쓴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힘센 여러 부류가 하나의 사슬로 묶인 카르텔 사건이다.
적어도 ‘이권 카르텔’이라는 말을 쓰고자 한다면 부정부패를 고리로 여러 이해관계자들이 직·간접으로 얽힌 이런 정도의 사건은 돼야 하지 않을까 싶다.
손원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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