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겹다’의 옛말은 ‘계우다’ 또는 ‘계오다’이다. ‘이기지 못하다’라는 뜻인데, 목적어를 요구하는 동사였다. ‘바람이 하늘 계우니’는 ‘바람이 하늘을 이기지 못하니’, ‘마음을 계와’는 ‘마음을 이기지 못하여’ 정도로 해석된다.
반면에 ‘겹다’는 형용사인데, ‘덥다, 좋다’처럼 뜻이 선명하지 못하여 ‘복에 겹다, 흥에 겹다’처럼 다른 말을 취하고 나서야 뜻이 잡힌다. ‘겹다’가 들어간 말은 어떤 기준을 초과하거나 견디기 어려운 상태를 뜻하는데, 낯가림이 심해 그리 많지도 않다. ‘눈물겹다, 역겹다, 정겹다, 흥겹다, 힘겹다.’ 이들 말은 모두 어떤 대상이나 상황에 대한 긍정이나 부정의 주관적 감정을 드러낸다.
‘역하다’만으로도 구역질이 나고 메스꺼운 느낌인데, ‘역겹다’는 거기에 ‘겹다’까지 겹쳐 부정적인 느낌이 극대화된다. 역겨운 생선 비린내나 시궁창 냄새를 맡으면 토할 것처럼 헛구역질이 나온다. ‘역겨움’은 의지적이지 않다. 냄새를 맡자마자 자동적으로 나오는 몸의 반응이다.
이 말을 사람에게 쓰면 그 순간 상대는 상종 못 할 인간, 악마적 인간, 위선적 인간, 냄새나는 인간이 된다. 대화는커녕 길에서 마주치기도 싫다. 역겨움의 감정은 이성이 마비되고 판단이 중지된 상태이다. 나도 이런 감정에 자주 빠진다. 복잡한 세상을 선악의 구도로 보게 만드는데, 개미지옥에 빠진 듯 여기서 헤어나기가 쉽지 않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망가뜨린다. 당신에게 역겨운 존재는 누구인가? 그게 개인이어도 문제지만, 특정 집단을 향할 때는 더욱 문제다. 그게 쌓이면 혐오가 난무하는 아수라장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