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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박찬수 칼럼] ‘작은 정부’라는 함정

등록 2021-07-21 14:18수정 2021-07-22 02:37

지금 우리가 당면한 가장 큰 과제는 무엇이고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이게 대선의 핵심 쟁점일 것이다. 팬데믹 극복이든 경제 부흥이든 또는 탈원전과 같은 갈등 사안의 해결이든, 차기 정부는 이걸 성공적으로 넘어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규모가 문제가 아니라 ‘할 일을 제대로 하는 강력한 정부’가 필요하다. 여기에 더해 ‘조정자·조율자의 역할을 하는 대통령’이 필요하다.
2011년 12월27일 열린 한나라당 비상대책위 회의에 함께 참석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준석 현 국민의힘 대표(맨 오른쪽).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공약했던 ‘작은 정부’를 이번엔 이준석 대표가 다시 꺼내들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2011년 12월27일 열린 한나라당 비상대책위 회의에 함께 참석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준석 현 국민의힘 대표(맨 오른쪽).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공약했던 ‘작은 정부’를 이번엔 이준석 대표가 다시 꺼내들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박찬수 선임논설위원
박찬수 선임논설위원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여성가족부·통일부 폐지를 주장한 걸 계기로 ‘작은 정부론’이 떠올랐다. 이 대표가 말하는 ‘작은 정부’가 정부 부처 수를 줄이겠다는 건지, 정부 기능의 변화까지 모색하겠다는 건지는 불분명하다. 다만 “작은 정부론은 가벼운 정책이 아니다”라고 말한 걸로 미뤄볼 때, 내년 3월 대선에서 핵심 정책공약으로 내세우려는 건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국민의힘과 그 전신인 보수정당들이 선거 때마다 거의 모두(박정희 대통령의 공화당만 빼고) ‘작은 정부’ ‘작은 청와대’를 들고나왔던 걸 떠올리면, 이 대표 발언은 전혀 새로운 게 아니다.

국민의힘이 매번 작은 정부를 공약으로 들고나온 이유는 명확하다. ‘정부가 세금만 많이 걷어가지 국민을 위해 하는 일이 뭐냐’라는 정서에 손쉽게 올라탈 수 있기 때문이다. 부자에게 세금 많이 걷는다고 ‘포퓰리즘’이라 비판하지만, 진짜 포퓰리즘은 대중의 분노에 편승하는 이런 선거용 공약이다. 팬데믹 상황에서 ‘정부 규모와 역할을 줄이자’고 말하는 건, 전쟁의 와중에 ‘국방부는 축소하고 대신 일선 군 병력을 늘리자’고 하는 것만큼이나 언어유희에 가깝다.

이준석 대표 말처럼 이게 ‘가벼운 정책’이 아니라면, 과거 국민의힘 출신 대통령들이 내건 ‘작은 정부’ 공약이 현실에서 어떻게 실패했는지 따져보고 그로부터 교훈을 얻는 게 먼저다. 이명박 대통령은 ‘작은 정부, 큰 시장’을 국정 기조로 내걸고 청와대와 정부 규모를 줄이겠다고 약속했다. 청와대 비서실 직원 수는 줄었지만, 정부 고위공무원단과 청와대 수석비서관·비서관 수는 오히려 늘었다. 이명박 청와대에서 정무수석을 지낸 박형준 현 부산시장은 나중에 “정권마다 집권 초기엔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국민 불신 탓에 슬림화한 비서실, 정원과 예산의 감축을 추구한다. 하지만 정확한 정책 판단과 역량 강화를 위해선 대통령실의 정원과 예산의 확대가 필요하다”고 솔직하게 밝혔다.(이숙종, 강원택 공편 <2013 대통령의 성공 조건>)

작은 정부를 규모가 아니라 기능으로 보더라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박근혜 대통령 시절의 청와대 비서실 규모는 전과 비슷했지만, 수석비서관과 실세 비서관의 권한은 훨씬 막강했다. 장관이 대통령 만나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다는 사실은, 국정농단 사건이 터지고서야 국민에게 알려졌다.

작은 정부의 성공 사례로 꼽히는 1980년대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는 교육·복지 예산을 삭감하고 인건비 등 경상비 지출을 줄였다. 그러나 국방 예산은 큰 폭으로 늘려, 집권 기간 중 전체 정부 예산 규모는 두배 가까이 커졌다. 레이건의 군비 확장이 경제난에 봉착한 소련을 압박해서 1991년 소비에트연방 붕괴로 이어지는 데 일조한 건 사실이다. 그렇다면 전략적으로 국방 예산을 늘린 레이건 행정부는 작은 정부가 맞는가. 국방 대신에 교육과 복지·환경 예산을 늘리면 그건 큰 정부인가.

작은 정부를 보수의 정체성으로 여기는 건 시대 흐름에 맞지 않고, 한국 현실에 조응하지도 않는다. 개인주의 전통이 강한 서구와 달리, 한국 사회엔 공공 안전과 서비스에 대한 요구가 훨씬 강력하다는 점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지난 4년간 무슨 일이 일어나든 정부 탓이라고 보수 언론이 공격해도 여론에 어느 정도 받아들여진 건 이런 배경이 크다. 왜 매번 보수 정권들이 ‘작은 정부’를 내걸고 출범해도 결국은 ‘큰 정부’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지 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금 우리가 당면한 가장 큰 과제는 무엇이고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이게 대선의 핵심 쟁점일 것이다. 팬데믹 극복이든 경제 부흥이든 또는 사회안전망 확대나 탈원전 같은 갈등 사안의 해결이든, 차기 정부는 이걸 성공적으로 넘어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규모가 문제가 아니라 ‘할 일을 제대로 하는 강력한 정부’가 필요하다.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 부처를 통폐합할 수도 있고 새로운 거대한 융합 부처를 만들 수도 있다. 먼저 ‘작은 정부’라는 덫에서 벗어나야 한다.

여기에 더해, ‘조정자·조율자의 역할을 하는 대통령’이 필요하다. 지금 우리 사회 거의 모든 현안엔 갈등과 이해가 첨예하게 얽혀 있어, 설득과 타협을 거치지 않고선 한 발자국도 진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과거 정권과 마찬가지로 문재인 청와대 역시 갈등 조정과 통합이란 측면에선 성공적이었다고 말하기 힘들다. 조율자, 설득자로서 대통령의 국정 운영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가. 실익 없는 ‘작은 정부’ 논쟁보다, 이 두가지 사안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지 놓고 다투는 게 훨씬 생산적이다.

선임논설위원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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