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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건희, 마리 앙투아네트, 다이아몬드 목걸이

등록 2024-01-24 15:06

[박찬수 칼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23일 충남 서천군 서천특화시장 화재 현장에서 윤석열 대통령을 만나 90도로 허리 숙여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동훈 위원장의 90도 꺾인 인사를 받음으로써 윤 대통령은 ‘김건희 직접 해명’이란 당내 요구를 잠재운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님은 윤 대통령도, 한 위원장도, 김 여사도 알고 있을 터이다. 300년 전 프랑스의 루이 16세는 아내 마리 앙투아네트의 결백을 분명히 보여주려 추기경을 구속했지만, 오히려 프랑스 민중의 분노에 기름을 끼얹었을 뿐이다.

 

박찬수│대기자

지난 23일 충남 서천시장에서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90도로 허리 숙이는 장면은 상징적이다. 평당원인 대통령이 당대표에 준하는 비대위원장에게 사퇴를 요구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온 게 21일이다. 20년 검찰 선후배 윤석열과 한동훈의 갈등은 그렇게 이틀 만에 막을 내렸다. 이런 쇼를 하려고 대통령은 국민과 약속했던 민생토론회까지 취소했던 건지 우스울 따름이다. 남은 건, 집권세력 내부에선 ‘김건희’라는 이름 석 자가 볼드모트처럼 불러서도 안 되고 건드려서도 안 되는 신성불가침의 영역이란 사실이다.

돌발적인 권력 내부 충돌이 김경율 비대위원의 ‘마리 앙투아네트’ 발언에서 촉발됐음은 분명해 보인다. 한 위원장이 서울 마포을에 김경율 위원의 전략공천을 내비친 날, 김 위원은 명품백 사건에 대한 김건희 여사 사과를 요구하면서 “프랑스 혁명이 왜 일어났는가. 마리 앙투아네트의 사치, 난잡한 사생활이 드러나 폭발한 거 아닌가. 지금 이 사건도 국민 감성을 건드렸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겨레 보도를 보면, 김건희 여사는 자신을 마리 앙투아네트에 비유한 발언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혁명 와중에 사치와 부패의 상징으로 몰려 처형당한 왕비에 비유했으니 어찌 분노하지 않을까 싶긴 하다. 그 노여움이 남편인 윤 대통령을 자극해서 한동훈 위원장의 고개를 숙이게 했으니, 이젠 다 끝난 것일까.

오스트리아에서 시집온 철없는 왕비를 단두대까지 끌어올린 데엔 유명한 다이아몬드 목걸이 스캔들이 한몫했다. 훗날 나폴레옹은 “왕비의 죽음은 명백히 다이아몬드 목걸이 사건에 기인한다”고 말했다. 프랑스혁명 4년 전에 일어난 이 사건은 등장인물은 많지만, 얼개는 단순하다.

파리의 보석 세공업자들이 647개의 다이아몬드가 박힌 엄청난 고가의 목걸이를 만들었는데, 팔 데가 없었다. 어느 백작 부인이 앙투아네트 왕비의 눈에 들고 싶어 하는 추기경에게 ‘왕비가 몰래 이 목걸이를 사고 싶어 하니까 당신이 사서 왕비에게 전달해주면 좋겠다’고 속이고 목걸이를 사게 했다. 백작 부인은 목걸이와 돈을 중간에서 가로채 달아났다. 나중에 추기경과 세공업자들이 앙투아네트에게 목걸이를 물어보면서 백작 부인의 사기는 들통이 났다. 왕비와는 관련 없는 전형적인 사기 사건이지만, 프랑스 귀족 사회의 부패와 탐욕, 부르봉 왕가의 사치와 허영을 드러내는 상징으로 프랑스 국민에겐 각인됐다.

물론 목걸이 스캔들과 명품백 사건을 비교할 수는 없다. 647개의 다이아몬드로 만든 초호화 목걸이에 비하면, 디올백은 겨우(?) 300만원짜리 작은 선물에 불과하다. 하지만 두 사건이 쌓아 올린 권력과 국민 사이 불신의 벽은 유사한 측면이 있다. 목걸이 스캔들 이전에 마리 앙투아네트는 사치와 낭비벽으로 왕실 재정을 탕진한다는 비난의 시선을 이미 받고 있었다. 다이아몬드 목걸이는 왕비의 평판을 바닥으로 완전히 끌어내리는 역할을 했을 뿐이다.

용산 대통령실은 ‘몰카 공작’이란 피해자성만 강조할 게 아니라, 왜 이 사건이 집권여당까지 흔들 만큼 뜨겁게 달아올랐는지 냉철하게 돌아봐야 한다. 김건희 여사를 둘러싸고 그동안 제기된 숱한 논란들, 박사학위 논문 표절과 주가 조작 의혹, 무속에 의지하고 인사에 개입한다는 의구심, 양평고속도로 특혜 논란까지, 이런 모든 것들이 명품백 사건 밑바닥에 켜켜이 쌓여 있다. 다이아몬드 목걸이에 대해 정말 아무것도 몰랐던 앙투아네트와 달리, 김건희 여사는 명품백을 직접 거리낌 없이 받았다. 대통령기록물로 규정해 국가재산으로 보관하고 있다는데 가장 중요한 질문, 왜 현장에서 그 백을 거절하지 않았는가에 대해선 답변하지 않는다.

한동훈 위원장의 90도 꺾인 인사를 받음으로써 윤 대통령은 ‘김건희 직접 해명’이란 당내 요구를 잠재운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님은 윤 대통령도, 한 위원장도, 김 여사도 알고 있을 터이다. 300년 전 프랑스의 루이 16세는 아내의 결백을 분명히 보여주려 추기경을 구속했지만, 오히려 프랑스 민중의 분노에 기름을 끼얹었을 뿐이다.

4월 총선이 다가올수록 명품백 논란은 더 거세게 물 위로 떠오를 것이다. 메마른 불신의 장작 위로 진실을 요구하는 불씨는 이미 떨어졌다. 세찬 바람 부는 재난 현장에서 윤석열과 한동훈 두 사람이 굳게 손을 맞잡는 퍼포먼스로 그걸 뛰어넘을 수는 없다.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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