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환 ㅣ 베이징 특파원
“세계보건기구(WHO)의 2단계 조사 계획서를 보면서 솔직히 깜짝 놀랐다. 계획서 안에 ‘중국이 실험실 규정을 위반해 바이러스를 유출했다’는 가설이 연구 중점으로 포함돼 있었기 때문이다. 상식에 대한 존중도 없고, 과학에 대해서도 오만한 태도를 여과 없이 드러냈다는 느낌이 들었다.”
쩡이신 중국 국가위생건강위원회 부주임은 22일 오전 코로나19 기원과 관련해 국무원 신문판공실(대변인실 격)이 마련한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어 그는 “코로나19 기원에 대한 조사는 과학적인 사안이며, 이 문제가 정치화하는 것에 명백히 반대한다. 2단계 조사는 당연히 1단계 조사를 기초로 회원국 간 충분한 토론과 협의를 거친 뒤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16일 세계보건기구가 회원국에 통보한 2단계 조사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뜻이다.
중국의 반발은 쉽게 예상이 가능했다. 세계보건기구의 발표 직후부터 치밀한 계획 아래 국내외 여론을 모아내려는 움직임이 뚜렷하게 감지됐기 때문이다.
“지난 3월 세계보건기구와 중국 전문가 합동 조사팀이 펴낸 연구보고서에서 이미 실험실 유출설은 극히 가능성이 낮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또 세계 각지의 초기 감염 사례와 냉동식품 등을 통한 전파 가능성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2단계 조사 계획이 발표된 직후인 지난 16일 오후 열린 정례 브리핑에서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렇게 말했다. 그는 “15일 세계보건기구 쪽에 코로나19 기원에 관한 조사가 정치화하는 것을 반대한다는 공개서한에 이미 48개국이 동참했다”고 강조했다.
중국 편에 선 나라는 어디일까? 자오 대변인은 20일 브리핑에서 “정의의 목소리를 낸 국가”로 “러시아, 벨라루스, 파키스탄, 스리랑카, 캄보디아, 이란, 시리아, 부룬디, 짐바브웨, 카메룬, 쿠바,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등을 언급했다. 이어 “그레나다, 키리바시, 솔로몬군도, 상투메 프린시페, 부르키나파소, 모리타니, 가나” 등 7개국도 동참 의사를 밝혔다고 덧붙였다. 중국 입장을 지지하는 나라가 나흘 만에 55개국으로 늘었다는 얘기다.
극단적 민족주의 성향을 보이는 <환구시보>도 여론몰이의 전면에 섰다. 신문은 세계보건기구의 통보 다음날인 17일부터 지난 5월 일부 누리꾼이 세계보건기구에 전달했다는 공개서한에 대한 서명운동을 주도하기 시작했다. 미 메릴랜드주 프레더릭에 자리한 미 육군에 딸린 고위험군 바이러스 연구소인 ‘포트 디트릭’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유출됐을 가능성에 대한 조사를 촉구하는 것이 뼈대다.
‘포트 디트릭’ 유출설은 지난해 중국 후베이성 우한의 바이러스 연구소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유출됐다는 주장이 나온 직후 중국 외교부가 맞불용으로 내놨다. 2019년 7월 해당 연구소가 ‘안전상의 이유’로 잠정 폐쇄된 일이 있는데, 그즈음에 주변에서 원인 모를 폐렴 등 코로나19 감염증과 유사한 질환을 앓는 이들이 크게 늘었다는 주장이다.
<환구시보> 기자는 공개서한 서명자가 75만명을 넘긴 지난 19일에 이어 500만명을 넘어선 21일에도 이에 대한 당국의 반응을 물었다. 자오 대변인은 기다렸다는 듯 “서명 개시 5일도 안 돼 500만명이 참가한 것은 중국 인민의 마음의 소리를 대표한다”고 화답했다. 이어 그는 “나치 독일과 일제 731부대가 세균전용으로 개발한 바이러스가 보관된 것으로 알려진 포트 디트릭은 물론 200여곳에 이르는 바이러스 연구용 해외 미군기지에 대한 전면적인 조사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제를 키워 핵심을 비켜간다. 중국식 외교의 새로운 전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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