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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코로나19와 함께 살기? 세상에 거저는 없다

등록 2021-07-22 19:49수정 2021-07-23 02:38

22일 오전 서울 송파구보건소 선별진료소에서 시민들이 코로나19 검사를 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22일 오전 서울 송파구보건소 선별진료소에서 시민들이 코로나19 검사를 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종규 논설위원

지난해 10월 초 미국 매사추세츠주의 작은 마을 그레이트배링턴에서 마틴 컬도프 하버드대 의대 교수 등 3명의 감염병 학자가 코로나19 방역의 방향 전환을 촉구하는 선언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봉쇄’ 정책이 심혈관 질환 악화, 암 검진 감소, 정신건강 악화 등을 야기해 장기적으로 공중보건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봉쇄를 풀되 노인 등 고위험군 보호에 집중해 사망률과 사회적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사망 위험이 낮은 젊은층은 일상으로 복귀해 ‘자연 감염’을 통해 면역력을 갖도록 하자는 제안도 내놓았다. ‘봉쇄 방역’을 둘러싼 논쟁을 촉발한 ‘그레이트배링턴 선언’이다.

열흘가량 뒤 국제 의학 학술지 <랜싯>에 이 선언을 반박하는 글이 실렸다. 유럽과 미국의 과학자와 의료 전문가 79명은 이 글에서 ‘고위험군 집중 보호’와 ‘집단면역’ 전략은 “과학적 증거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는 위험한 오류”라고 주장했다. 젊은 사람들 사이에 감염이 확산되면 전체 인구의 감염률과 치명률이 높아질 위험이 있고, 의료시스템 붕괴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고위험군을 따로 선별해 보호하기도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지적했다. 백신과 치료제가 나올 때까지 사회를 보호하는 최선의 방법은 코로나19의 지역사회 확산을 막는 것이라고 이들은 주장했다. 이 글에는 ‘존 스노 선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존 스노는 1850년대 영국 런던에서 유행하던 콜레라가 오염된 식수로 인한 수인성 전염병이라는 사실을 밝혀낸 감염병 학자다.

당시 코로나19 확산세가 워낙 거셌던지라 둘 사이의 논쟁은 큰 주목을 받지 못했고, 곧이어 백신이 개발되면서 잦아들었다. 사망자 규모 등 지금까지의 ‘방역 성적표’를 보면 ‘존 스노’ 진영의 승리가 분명해 보인다. 백신이 나오기 전 방역을 느슨하게 했던 나라들이 ‘방역 모범국’보다 훨씬 큰 피해를 입었기 때문이다.

최근 백신 접종률이 높아지면서 ‘방역 패러다임’을 둘러싼 논쟁이 재연되고 있다. 이번엔 전문가들 사이의 논쟁에 그치지 않고 실제 ‘실험’에 나서는 나라들이 있다는 점이 다르다. 가장 ‘과감한’ 나라는 영국이다. 영국은 지난 19일을 ‘자유의 날’로 선포하고, 거의 모든 방역 규제를 없앴다. 델타 변이 탓에 확진자가 수만명씩 나오고 있지만 예정대로 ‘방역 무장해제’를 강행했다. 싱가포르도 지난달 코로나19를 하나의 ‘계절성 독감’처럼 다루겠다고 선언했다. 방역의 무게중심을 ‘확진자 증가 억제’에서 ‘중증환자·사망자 최소화’로 옮겨 가겠다는 것이다. 이런 실험의 ‘뒷배’는 높은 백신 접종률이다. 영국의 인구 대비 접종률은 68.2%(완료 53.2%), 싱가포르는 71.2%(완료 47.7%)에 이른다. 백신 접종률이 높아지면서 중증화율과 치명률이 낮아지고 있는 것이 이런 ‘완화 전략’의 밑바탕이다.

그러나 이런 실험이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특히 급격하게 방역 장벽을 허문 영국에 대해선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존 스노 선언’을 이끌었던 과학자 120여명은 최근 영국의 조처를 두고 “위험하고 시기상조”라고 비판하는 내용의 글을 <랜싯>에 실었다. 이들은 “집단면역을 달성하기에 충분할 정도의 백신 접종이 이뤄질 때까지는 ‘비례적인 완화’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영국 내 방역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감염 폭증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달 전 ‘코로나와의 공존’을 선언했던 싱가포르도 요 며칠 새 집단감염이 잇따르자 다시 방역의 고삐를 죄고 있다. ‘코로나19와 함께 살아가기’(위드 코로나)가 얼마나 험난한지 보여준다.

최근 국내에서도 코로나와 함께 사는 방향으로 방역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고위험군 백신 접종으로 치명률과 중증화율이 점차 낮아지고 있는데, 큰 사회적 비용이 드는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를 언제까지 유지할 것이냐는 문제제기다. 그 바탕에는 코로나19 종식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인식도 자리잡고 있다. 한가한 소리라고 흘려들을 일도 아니고, 그렇다고 서두를 일도 아니다. 지속가능한 방역체계로의 전환은 꼭 필요하지만, 세상에 거저는 없다. 방역을 어느 수준으로 할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고, 달라진 상황에 맞게 의료체계도 정비해야 한다. 치밀하게 준비하지 않으면 큰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질서 있는 ‘출구 전략’, 지금부터 차근차근 준비해야 한다.

jk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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