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31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 청암홀에서 후원회원 대상 ‘탐사보도와 후원미디어의 미래’를 주제로 류이근, 방준호 기자가 토크콘서트를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얼마 전 뜻밖의 카톡을 받았다. 지인에게서 날아온 생일 축하 메시지 속에 섞여 있었다. ‘아니 생일까지.’ 기분은 의외여서 더욱 좋았다.
3년 전만 해도 카톡을 보낸 ‘이 선생님’을 몰랐다. 2018년 11월 초 처음 봤다. <한겨레21> 독자와의 만남 행사 때다. 그의 가족들과 함께 사진도 찍었다. 일회적 만남에 그칠까 했는데, 그 뒤 네번이나 더 봤다. 그는 <한겨레>와 <한겨레21>의 오랜 독자다. 2019년 3월 <한겨레21>이 후원제를 시작하자 그는 선뜻 후원자가 되었다. 기회가 되면 더 후원하고 싶다고도 말했다. 그 약속을 지켰다. 지난 6월부터 한겨레를 후원하고 있다.
지난 몇년 새 친구보다 더 자주 그를 본 것은 숫제 후원회원제 때문이다.
‘강 이사님’은 지난 3월 일본 주간지 <주간문춘>(슈칸분슌)을 다룬 기사를 읽다가 생각났다면서 카톡을 보내왔다. 그는 한동안 <한겨레21> 뉴스룸에 기사 마감일에 맞춰 격주로 전북 군산 명물 이성당 빵을 보내곤 했다. <한겨레21> 정기독자였던 그는 <한겨레21> 후원자가 되어줬다. 지금은 은퇴해 늦깎이 대학생이 돼 일본어를 배우고 있다. 지난해 2월 그를 처음 만났고 이후 가끔 연락을 주고받는다.
한겨레가 후원회원제를 시작한 지 사흘 만에 그한테서 다시 연락이 왔다. 정기 후원회원에 서둘러 가입했단다. 한겨레가 첫사랑 같은 존재라는 그와 연락을 주고받는 건 숫제 후원회원제 덕이다.
후원제를 하지 않았다면, 이 선생님이나 강 이사님을 계속 만나거나 소식을 나누는 일은 없을 터이다. 후원제가 고리가 되어 지난 2년 반 동안 족히 수십명의 독자를 만났다. 때론 감사 편지를 보내고, 카톡과 메일을 나눴다.
후원제는 독자와 언론의 단절되어 있는 관계를 잇는 다리가 되고 있다. 한겨레 후원회원제의 대명사인 ‘서포터즈 벗’을 시작한 뒤 한겨레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후원회원을 포함한 독자와 소통의 양이 많아졌다. 소통의 창도 많아지고 넓어졌다. 벗들에게 한달에 한번꼴로 뉴스레터(‘한겨-레터’)를 보내고, 카카오톡 채널을 통해 수시로 알림과 소식을 띄운다. 한겨레 서포터즈 벗의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계정도 운영하고 있다. 벌써 조촐하게나마 벗들과 첫 오프라인 만남도 가졌고 후원회원 대상 작은 행사도 열었다. 한겨레 독자들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말을 걸고 있는데 이 모든 것들이 숫제 후원회원제 때문이다. 후원회원제가 아니었다면 하지 않았을 일들이다.
서포터즈 벗 시작 전 한겨레는 독자에게 말 거는 데 서툴렀다. 아니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않았다. 많은 언론에 독자는 고마우면서도 귀찮은 존재란 낡은 인식이 짙게 배어 있는데 한겨레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독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슨 말을 하는지 애써 더 듣고자 하지 않았다.
후원제는 큰 변화의 시작점이다. 후원자나 잠재 후원자와 소통 없이 후원의 확대나 유지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소통의 필요성은 더욱 커졌다.
독자와 소통은 내부 성찰을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내부 구성원이 더 자세하게 보긴 하겠으나 외부자의 눈높이에서 더 정확히 보이는 것들이 있다. 독자는 한겨레의 부족한 점을 비춰주는 거울이다.
후원회원제를 계기로 막연히 생각했던 한겨레의 결핍을 더욱 냉정히 깨닫는 기회가 됐다. 기대와 바람을 담은 응원과 격려도 많았지만, 한겨레가 못하는 모습을 지적하는 외부자의 목소리도 컸다. 독자가 기대하는 한겨레와 한겨레의 현주소 사이 적지 않은 간극이 존재한다. 그 간극을 서둘러 메우지 않는다면 한겨레는 더 쪼그라들 수밖에 없다.
하여 더 좋은 콘텐츠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할 수 없다. 몰랐던 사실은 아니지만, 후원제를 준비하고 시행하면서 갖게 된 소통을 통해 더욱 또렷해졌다.
이 선생님은 ‘정론직필 해달라’고, 강 이사님은 ‘초심을 잃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1~2년 뒤 이들의 바람과 당부에 답할 수 있도록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는 게 한겨레의 몫이다.
류이근 미디어전략실장
ryuyige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