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환봉 | 소통데스크 겸 불평등데스크
최근에 친구와 술을 마시다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네가 회사 욕하는 건 처음 듣는다.” 2011년 한겨레에 입사할 무렵부터 알게 된 친구인데다, 그동안 숱하게 만나 술잔을 기울인 사이였습니다. 그렇게 지내온 친구에게 11년 동안 회사 욕을 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돌이켜보면 회사가 미운 적도 많았습니다. 일과 사람에 부대끼며 느끼는 고단함이야 세상의 모든 직장인이 겪는 기본 옵션이기에 구시렁거리며 유난 떨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취재 결과를 곧바로 세상에 내놓고 이내 평가받는 언론사의 특성 탓에 생기는 스트레스는 여느 회사와 다른 고유함이 있습니다. 당장 벌어지는 일의 미래를 알기 어렵기 때문에 어떤 사건을 열심히 취재해야 할지 선택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한국 언론 지형에서 한겨레가 자리하고 있는 위치 때문에 의도가 없는 기사도 의도가 있다고 오해받는 일 역시 잦았습니다. 반응을 짐작하기 어려운 세상과의 대면은 늘 불안을 동반했고, 무엇이 올바른 선택인지 끊임없이 갈등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래도 결국 선택은 이뤄졌고 다음날 신문은 어김없이 인쇄됐습니다. 지면을 받아 들고 뿌듯한 날도 많았지만, 실망한 날도 적지 않았고 때론 좌절하기도 했습니다.
다만 끝까지 미웠던 적은 없습니다. 한겨레 구성원 모두가 더 나은 저널리즘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믿음이 흔들린 적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근거 없는 믿음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경험한 한겨레는 진통을 겪더라도 늘 더 나은 방향을 찾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어쩌면 밖으로는 잘 비치지 않았을 그 노력은 회사에 대한 애정을 식지 않게 해주었습니다. 실망과 좌절은 더 나아질 수 있다는 기대를 이기지 못하기 마련입니다.
소통데스크를 하면서 독자의 항의 전화에 응대하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그럴 땐 저의 한겨레에 대한 애증을 떠올리곤 합니다. 내부자인 저마저 회사가 미운 적이 적지 않은데, 독자들은 어련하겠냐고 자기암시를 하고 항의 내용을 살핀 뒤 마음 단단히 먹고 전화를 겁니다. 어김없이 휴대전화 너머로 큰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합니다. 저에게 응대할 무기는 별로 없습니다. 그동안 한겨레가 잘해왔던 것들을 떠올리시게 하면서 당장의 분노를 삭이고 독자들의 마음과 한겨레 기자들의 마음이 결국엔 크게 다르지 않다는 믿음을 드리는 것이 전부입니다. 짧게는 20분, 길게는 1시간 넘는 통화를 하다 보면 어느새 대화는 순조로워집니다. 그리고 대부분 “그래도 믿을 데가 한겨레밖에 더 있냐” “앞으로 잘 지켜보겠다” “더 힘을 내달라” 등의 격려로 긴 통화가 마무리되곤 합니다. 제가 달변이기 때문에 벌어지는 훈훈한 결말은 아닙니다. 독자들이 여전히 한겨레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고 믿습니다.
언론사가 항상 잘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날이 갈수록 취재 경쟁은 심해집니다. 사회 갈등이 깊어지면서 중심을 제대로 잡는 일은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독자들에게 한겨레가 못마땅한 일도 많이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독자들께 기대만큼은 버리지 말아 달라고 당부드리고 싶습니다. 내부자로 장담컨대, 많은 사람이 이곳에서 더 나은 세상과 더 좋은 언론을 꿈꾸며 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술자리가 끝날 때쯤 친구가 “힘드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여전히 좋은 동료들과 일하는 것이 즐겁다”고 대답했습니다. 이제 곧 대선이 마무리되고 새 정부가 들어섭니다. 변화에는 희망뿐 아니라 두려움도 따릅니다. 변화에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는 변하지 않을 것에 발을 단단히 디뎌야 합니다. 저에겐 동료들이 그 디딜 자리입니다. 독자들에겐 한겨레가 그렇게 디딜 수 있는 자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런 기대를 공짜로 바랄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독자들과 한 통화에서 들었던 격려와 우려를 흘려듣지 않고 더 나아지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10년쯤 뒤에도 친구에게 같은 대답을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때는 독자들에게 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제가 되어 있기를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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