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에이치케이>(NHK) 방송이 1955년 제작·방영했던 군함도 관련 20분 분량의 다큐멘터리 ‘녹색 없는 섬’이 우익들의 집중 공격을 당하고 있다. 다큐 갈무리
김소연
도쿄 특파원
최근 ‘군함도’와 관련해 중요한 결정이 있었다. 유네스코는 일본이 2015년 7월 근대산업시설 세계유산 등재 당시 23곳 중 7곳에서 조선인 강제노동 등이 있었는데, 이런 역사를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며 강한 유감을 표명한 결정문을 지난달 22일 채택했다. 대표적인 곳이 군함도로 불렸던 일본 나가사키 앞바다에 있는 섬 하시마다. 태평양전쟁 시기 강제 동원된 조선인들이 탄광에서 가혹한 노동에 시달리고 죽어간 곳이다.
일본 정부는 내년 12월1일까지 이행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일본이 강제 동원을 인정하고 희생자를 기리는 전시를 한다면 가장 바람직한 일이지만, 가능성은 낮다. 일본 정부는 조선인들이 당시 일본 국민이었기 때문에 불법적인 강제 동원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차별도 없었다고 강조한다. 이는 한반도 식민 지배가 정당하고 합법적이었다는 일본의 역사관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일본에서 오히려 ‘군함도 역사 흔들기’가 거세질 가능성이 있다. 공격은 이미 시작됐다. <엔에이치케이>(NHK) 방송이 1955년 제작한 군함도 관련 20분 분량의 다큐멘터리 ‘녹색 없는 섬’이 우익들에게 집중포화를 맞고 있다. 영상 중간에 탄광 노동자가 허리를 펼 수 없는 공간에서 안전모에 훈도시(일본식 남성 속옷)만 입고 일하는 모습이 여러번 나오는데, 이것이 날조라고 추궁하고 있다.
산업유산국민회의(국민회의)는 군함도 원주민을 내세워 “작업복을 반드시 입어야 했다”, “낮고 비좁은 갱도는 없었다”며 영상 속 탄광은 군함도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국민회의는 일본 정부의 위탁을 받아 산업유산정보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극우 성향의 단체다. 도쿄 신주쿠에 있는 이 센터는 일본이 역사적 사실을 알리겠다고 유네스코와 약속해 만든 곳이다. 가토 고코 센터장은 국민회의를 만들었고, 아베 신조 정부에서 내각관방 참여 등을 지냈다.
군함도가 위태로운 것은 ‘역사 흔들기’에 극우단체뿐만 아니라 정부, 정치권도 적극 나서고 있어서다. 사실상 전면전을 하고 있는 모양새다. 자민당 보수 의원들은 <엔에이치케이> 관계자를 국회로 불러 영상이 거짓이라는 것을 인정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엔에이치케이> 쪽이 “내부 검증을 했지만 하시마 탄광이 아니라는 증거가 없다”고 버티자, 이 방송 회장까지 불러 “날조를 인정하라”고 다그칠 정도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 것일까? 이들은 영상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인정받은 뒤 “한국의 주장은 거짓이었다”고 침소봉대하려는 목적이 있다. 이들은 “한국이 이 영상을 이용해 (군함도와 관련한) 강제노동, 노예노동의 증거로 사용하고 있다”, “하시마의 부정적 이미지는 <엔에이치케이> 날조에서 시작됐다”고 여론을 몰아가고 있다.
이 영상은 군함도 탄광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유추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긴 하다. 하지만 한·일 학계 등에서는 다른 수많은 자료와 피해자들의 증언 등을 통해 오래전부터 군함도의 실상을 알려왔다. 설사 영상이 문제가 있다고 해도 일본의 강제 동원 역사가 부정되기는 힘들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집착하는 것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서 비슷한 방식으로 엄청난 효과를 거둔 경험이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여러 논란과 상관없이 영상을 한번이라도 본 사람은 날조라는 주장에 황당할 수밖에 없다. 이 다큐는 군함도의 열악한 실태를 고발하기 위해 만든 것이 아니다. 오히려 주민들이 쇼핑하고, 여가 생활을 즐기는 모습이 소개되는 등 홍보 영상에 가깝다. 탄광 부분에서도 “석탄을 캐는 광부의 얼굴에는 기쁨이 가득하다”는 산업역군의 자랑스러움이 가득한 내레이션이 나온다. <엔에이치케이>가 이런 홍보 다큐를 뭐 하러 왜곡하겠나. 이것은 상식의 문제다.
dand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