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 갈래에 있는 책들도 이것저것 찾아봤습니다. 귀농을 하게 된 이유, 불편함에 익숙해져야 하는 이유 등에 치중되더군요. 건강과 가족, 환경과 교육. 꼭 제 마음 같아서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습니다만 ‘준비물’에 대한 깨달음을 얻지는 못했습니다. 뭔가 귀농 교과서 같은 게 있으면 좋겠다 싶습니다.
[엄마아들 귀농서신] 선무영 ㅣ 시골로 가려는 아들·로스쿨 졸업
FIFO(Fun In Fun Out), 재밌는 게 들어가야 재밌는 게 나온다. 회계에서 먼저 재고에 들어온 재산을 먼저 처리한다는 선입선출법(First In First Out)을 비틀어서 만든 회사의 좌우명이었습니다. 벌써 7년도 넘었네요. 대학교 졸업 전 스타트업을 했습니다. 광고사 인턴 시절에 만난 카피라이터, 디자이너와 함께였죠. 학교도 모두 다른데 세번의 창업대회에 참가했고, 결국 1등 상을 받으며 일을 키웠어요. 나아가야 할 길이 분명했습니다. 우선 기획서를 써서, 창업대회에 나갑니다. 창업대회에서 본선에 진출하면 보통 ‘멘토’를 붙여줘요. 멘토링을 진행하며, 작은 생각을 현실화할 순서를 정했습니다. 멘토링을 진행하면서 생각들은 조금씩 현실적으로 조정되고 구체화되었어요. 조회수나 ‘좋아요’ 등으로 존재감을 드러내고 투자자들에게 프레젠테이션(PT) 하고 투자를 이끌어냅니다. 법인화하며 인력을 고용하고 영업하면서 궤도에 안착하도록 안간힘을 씁니다. 한 단계 한 단계 어렵고 힘든 길이지만, 이렇게 구체화된 로드맵이 있었어요. 관련 서적도 정말 많고, 주변에 도움을 구할 곳도 더러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생각’에서 구체적인 무언가를 만드는 과정이 정말 즐거웠어요. 그런데 또 다른 창업이자 청년 귀농을 준비하는 지금, 스스로를 위한 기획서를 써보려 해도 성명서나 선언문에 가까워집니다. 벼락치기보다 ‘차근차근’이 좋아서 미리 그림을 그려보고 싶은데 잘 안되네요.
요새 하루 세시간씩 운동합니다. 괴산에 있다가 이모 차를 타고 올라오는 중에 얻은 깨달음에서 비롯해요. 이모도 시골살이를 마음에 두신 걸 아니까, 서둘러 내려가시지 않는 이유 등을 묻고 있었습니다. 지금을 충분히 즐기고 계시며, 시골에 간다는 게 큰 변화라서 도시에서의 삶을 마저 만끽하시고 싶으시다고요. 그리고 꼭 농사는 짓지 않으시겠다 하셨습니다. 어머니 농사지으시는 걸 보면 너무 고되어 보이니 아예 시작을 안 하신다면서요. 꼼꼼히 생각해두신 것 같아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아직 어리기에 비교적 체력이 좋은 저는 농사지으면서도 하고자 하는 걸 할 수 있지 않겠냐 물었습니다. 낮에는 밭을 매고, 밤에는 공부하며, 글 쓰고 사업도 하고 싶다고요. 주경야독. 이모는 위인들의 이야기를 가져오는 것은 합리적인 생각이 아닌 것 같다며, 철인이 아니고서야 그럴 수 있겠냐 했습니다. 그때 ‘철인이 되어야겠다’ 마음먹었어요. 그래서 새벽같이 요가하고, 아내 출근길에 같이 나가서 반려견 산책시키고, 돌아와 다시 산에 약수를 받으러 갑니다. 돌아오는 길에 줄넘기 뛰고, 집에 와서는 팔굽혀펴기, 스쾃, 런지… 닥치는 대로 운동하고 있습니다.
우선 운동부터 해보며 가이드라인을 짜보자 생각했지만, 여전히 뭘 준비해 둬야 하는지 감을 잡긴 쉽지 않습니다. 귀농 갈래에 있는 책들도 이것저것 찾아봤습니다. 귀농을 하게 된 이유, 불편함에 익숙해져야 하는 이유 등에 치중되더군요. 건강과 가족, 환경과 교육. 꼭 제 마음 같아서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습니다만 ‘준비물’에 대한 깨달음을 얻지는 못했습니다. 실용서적들도 더러 있었어요. 기본 농사법에서부터 농막 짓기, 담벼락 세우기, 약초 고르기 등 시골 살면서 도움이 될 정보들이 참 많았습니다만, 귀농할 예정이나 아직 도시에 살고 있는 제게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지금 도시에서 먼저 준비할 수 있는 게 무엇일지 궁금해요. 그래서 예비 청년귀농인을 대상으로 하는 강좌도 신청했습니다. 전국귀농운동본부를 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땅의 젊은이들이여! 이제 흙으로, 고향으로, 농촌으로 돌아가자. 가서 땅을 갈고 거름을 내어 씨를 뿌리자”는 선언을 무려 25년 전에 한 단체입니다. 15명의 청년을 대상으로 9월 말부터 한달간 수요일 및 주말에 진행되는데, 수요일에는 마주한 현실과 귀농 현실에 대한 이론, 생명철학 등 강의가 있고, 주말 세차례 1박2일로 농촌실습을 갑니다. 농촌실습이야 괴산에서 실컷 할 수 있죠. 아마도 귀농 서적들을 접하며 느꼈던, 나에게 꼭 필요한 정보는 없을 것 같다는 걱정이 지레 들기도 합니다. 그래도 일단 저처럼 고민하는 사람들을 좀 만나보고 싶은 마음이 강해서 신청하게 됐어요.
여태 가이드라인이 있는 삶을 이어왔네요. 어려서는 어머니가 하라는 것 하지 말라는 것을 가려주셨으며, 또 교과서가 함께했고, 선생님들이 있었죠. 나이를 좀 먹어서도 주변에 1년에서 10년 위까지 선배들이 있었는데! 늘 곁에 있어 소중한 걸 몰랐던 거죠. 시골에 가고자 마음먹고 나니, 뭔가 ‘귀농 교과서’ 같은 게 있으면 좋겠다 싶습니다. 어머니께서 시골 가실 적 마음과 지금의 제 마음이 아마도 많이 다르겠지만, 그래도 당장 물을 데가 따로 없습니다. 어머니가 아직 도시에 살고 계시고, 곧 귀농하시려 한다면 따로 준비해두고 싶은 게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