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의 꿈을 접고, 1년입니다. 입시를 준비하고, 로스쿨을 다니면서 ‘떨어지면 어찌 될까’ 상상하는 것조차 두려웠는데, 오히려 사는 게 재밌어졌습니다. 달라진 것은 조금 더 마음 들여 공부할 거리를 찾아냈다는 거예요. 저는 언제나 주변에 위안과 자극이 되는 사람으로 살고자 했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엄마아들 귀농서신] 선무영 | 시골로 가려는 아들·로스쿨 졸업
어머니 글을 읽고 ‘말로’의 노래를 한참 들었네요. 제가 좋아하는 가수도 소개해드릴까 합니다. 밴드 ‘장기하와 얼굴들’의 보컬 장기하입니다. 목소리 고운 가수들을 따라 하기보다 자기 이야기를 그저 자기 호흡대로 노래하는 장기하의 목소리가 좋습니다. 드러머 출신답게 위트 있는 박자감도 돋보입니다. 특히나 ‘장얼’의 1집을 좋아해요. 왠지 남들이 가라는 길보다 노래를 하겠다고 결심하게 된 가수 장기하의 마음이 보이는 듯합니다. 1집의 수록곡들을 제 해석대로 풀어보자면 이래요. 사람들이 이야기하던 젖과 꿀이 흐르는 곳을 찾아왔는데 ‘여긴 아무것도 없잖어’. 그래서 이제는 떠나자며 부른 노래가 ‘달이 차오른다, 가자’. 그렇게 달 따러 갈 적에도 우리는 ‘느리게 걷자’. 뛰어다니는 사람들 사이로 그렇게 느긋하게 다녀도 ‘별일 없이 산다’며 노래하는 장기하가 좋았습니다.
수능을 마치고 나오던 길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가채점을 하고서는 ‘나는 망했다’며 방문 걸어 잠그고 말 시키지 말라며 생떼 부리던 것도 생각나네요. 지나고 보니 인생 운운할 정도로 중요한 건 아니었습니다. 수능 치기 전까지 선생님들이 그랬어요. 명문대 정도는 다녀야 사람들이 목소리를 들어준다며 허튼 생각 하지 말고 학교 잘 가라고요. 아무도 모르는 학교 가면 아무도 모르게 죽을 거라던 무지막지한 선생님도 있었습니다. 그 말은 틀렸어요. 대학교 이름이 무슨 죽을 자리까지 결정하겠습니까. 아마 선생님이 하려는 말은, ‘공부 열심히 해서 대학을 잘 가면, 좋은 곳에 취직하고, 훌륭한 배우자 만나서, 예쁜 아파트에서, 아들딸 하나씩 낳고, 행복하게 살다가 편히 죽을 수 있다는 말이었겠거니’ 하고 좋게 생각해봅니다.
얼마 전까지 저는 그런 선생님의 트랙을 따라 살았습니다. 그대로만 살면 ‘기름진 땅이 나온다길래, 죽을 둥 살 둥 하고 왔는데’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광채가 나는 눈을 가진 선지자의 입술 사이로 그 어떤 노래보다도 아름다운 음성이 “나를 믿으라!” 머리를 조아린 다음 거친 가시밭길을 지나 꼬박 석달을 왔지마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되돌아갈 수도 없어서(이상 ‘아무것도 없잖어’ 가사 중) 한숨을 푹푹 쉬며 법전을 붙잡고 있었어요. ‘말을 하면 아무도 못 알아들을지 몰라 지레 겁먹고 벙어리가 된 소년은’ 차오르는 달을 보며, 이러다 영영 못 가는 건 아닌가 걱정했습니다. 그런데 ‘달이 너무나 떨렸’기에(이상 ‘달이 차오른다, 가자’ 가사 중), 아내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전했습니다. ‘채찍을 든 도깨비 같은 시뻘건 아저씨가 눈을 부라려도 적어도 나는 네게 뭐라 안 해 그저 잠시 앉았다 다시 가면 돼’ 하면서 우리는 느리게 걷자(이상 ‘느리게 걷자’ 가사 중)고,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거라고 서로를 다독였습니다. 가끔 창밖으로 지는 해를 보며, 아내에게 ‘싸구려 커피’밖에 사주지 못하면 어쩌나, 내가 잘못 생각한 거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을 하기도 하지만 저는 지금 ‘별일 없이’ 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어떤 일이든 다른 길을 걷는 사람들은 틀렸고 스스로 맞았다는 걸 확인하고 싶어하는 듯해요. 물론 저도 그렇습니다. 생각이 다른 사람이 괴로워할 때면, ‘그것 봐! 내가 말했지’라는 말이 혀끝에서 맴돕니다. 요새는 제가 이런 말을 듣습니다. 별로 하는 일 없이 사는 것 같아서 그러는 걸까요. 정말 가까운 친구들이 저를 두고, 이제라도 변호사 시험을 다시 준비해보라는 말을 해줘요. 제 걱정에 하는 말이겠지만, 묘하게 그 선생님이 생각납니다. 그 친구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노래가 장기하와 얼굴들 1집의 마지막 수록곡인 ‘별일 없이 산다’예요.
노래는 이렇게 시작해요. “니가 깜짝 놀랄 만한 얘기를 들려주마. 아마 절대로 기쁘게 듣지는 못할 거다. 뭐냐 하면. 나는 별일 없이 산다. 뭐 별다른 걱정 없다. 이렇다 할 고민 없다.” 변호사의 꿈을 접고, 1년입니다. 입시를 준비하고, 로스쿨을 다니면서 ‘떨어지면 어찌 될까’ 상상하는 것조차 두려웠는데, 오히려 사는 게 재밌어졌습니다. 생각해보면 내가 길을 잘못 든 거면 어쩌나 하는 마음은 언제나 가지고 있던 것 같아요. 더 많은 것을 이루고 싶다는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달라진 것은 조금 더 마음 들여 공부할 거리를 찾아냈다는 거예요. 저는 언제나 주변에 위안과 자극이 되는 사람으로 살고자 했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변호사 시험이 한달도 채 남지 않았습니다. 세번째 시험을 준비하고 있을 동기들에게, 그리고 시험에 든 모든 이에게 힘이 되었으면 해요. 원하는 결과를 얻으면 변호사(혹은 그 무엇)가 되는 거니까 잘된 거고! 그렇지 못하더라도 이렇게 나처럼 하루하루 신나고 즐겁게 살 수 있으니까 너무 걱정 말라고요.